미식가들의 군침을 돋우는 중국 음식 가운데 이맘때 특히 인기 있는 것이 있다. ‘다자셰(大閘蟹)’라고 불리는 민물털게다. 우리에게는 ‘상하이크랩’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는 상하이에서 1시간 남짓 떨어진 장쑤 성 쑤저우에 있는 천연호수 양청(陽澄) 호가 원산지로 해마다 9∼11월이 제철이다. 한국에서 전어 맛을 잊지 못해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처럼 중국에선 상하이 털게 맛을 잊지 못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는 미식가가 참 많다.
얼마 전 서울에서 온 투자가들에게 다자셰를 대접하고자 양청 호에 간 적이 있다. 양청 호 입구부터 색색의 파라솔을 펼친 장사꾼의 요란한 호객 행위와 가격을 흥정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투자자들을 최고의 접대 코스로 모신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다. 투자자들의 마음을 한번에 사로잡을 것 같은 즐거운 착각에 빠졌다.
그런데 양청 호의 모습은 몇 해 동안 보아왔던 북적거리는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차가운 호수 바람으로 휑하고 썰렁했다. 최고의 접대는커녕 얼굴이 붉어지고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중국 경기가 죽긴 확실히 죽었네요.” 계면쩍은 설명으로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허사였다. 중국 경기가 죽었는데 무얼 투자하면 좋겠냐는 힐책이 뒤따랐다. 말문이 딱 막히는 순간이었다.
2012년 11월 18차 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를 필두로 제5세대 지도부가 등장했다. 5세대 지도부는 보수와 개혁으로 구분하자면 개혁파에 가깝지만 과거 지도부와 마찬가지로 집권 초반기에는 정치개혁보다는 경제성장 정책에 주력할 것으로 판단된다. 가뜩이나 유럽 재정위기가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미국의 재정절벽(재정지출이 줄면서 경기가 침체되는 현상) 논란으로 세계경제가 시끄러운 가운데 중국의 경제성장 정책은 세계 경제에 가뭄의 단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도부도 경제성장률 전망을 8% 내외로 예측한다고 하니 기대해볼 만하다. 지도부의 자신감 있는 설명으로 추측해보면 2013년의 경제성장 정책은 2012년보다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2012년은 정권교체기여서 경제운용 정책에 운신의 폭이 작았지만 2013년부터는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사업을 계획한다면 중국의 정책방향 속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좋겠다. 5세대 지도부가 생각하는 중국 경제의 목표는 후진타오 주석의 ‘과학적 발전관’을 계승 발전시켜 고부가가치 산업을 확대하고 산업구조 개편 등 효율성을 높이는 데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제7대 전략산업(항공우주 철강 화공 자동차 인터넷 신재생에너지 에너지절감)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내수시장을 살리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중국은 이미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000달러를 넘는 나라가 됐다. 따라서 내수산업에 특히 좋은 투자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길거리에서 화장을 곱게 한 중국 여성을 전보다는 쉽게 만나게 된다. 이래서 한국의 화장품 회사들이 잘나가는 것 같다. 골프인구도 많이 늘었고 레저산업에 대한 관심도 부쩍 커졌다. 앞으로는 패션 미용 인터넷 자동차 레저 온라인교육 같은 내수산업이 많이 부상할 것 같다.
투자자들과 양청 호를 다녀오던 날, 마지막으로 쑤저우에서 녹차 한잔을 마시며 대화를 나눌 겸 ‘평탄’ 연주를 들으러 갔다. 독특한 중국 문화상품을 소개해 접대효과를 한층 끌어올릴 셈이었다. 평탄은 두 사람이 중국의 전통악기인 삼현금(三弦)과 비파(琵琶)로 반주를 하며 민간소설과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한국의 판소리에 가깝다.
그런데 그날따라 평탄 소리마저 구슬프게 들렸다. 손님들의 표정도 가라앉아 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효과적인 접대가 아닌 것만 같았다.
필자처럼 중국에서 일하는 주재원들은 가급적이면 중국을 좋게 보려는 경향이 있지만 요즘은 경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중국 새 지도부의 계획은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투자자 한 분이 필자에게 말했다. “윤 소장, 내년엔 중국 경제가 괜찮아지겠죠. 차근차근 검토해 봅시다.”
그렇다. 투자자들에게도 중국은 멀면서도 가까운 나라, 어려우면서도 버려서는 안 되는 투자 대상인 것이다. 투자자의 한마디에 긴장감과 피로감이 단번에 날아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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