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전(가명·37) 씨는 2008년 초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펀드에 1500만 원을 거치식으로 넣었다. 하지만 올해 11월 현재 펀드 수익률은 ―32%로 원금을 500만 원 가까이 손해 봤다. 결국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펀드를 해약했다.
그는 다른 투자처를 찾는 동안 정기예금에 돈을 넣어 뒀지만 아직도 마땅한 대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금융시장이 어떻게 될지 몰라 투자를 못 하겠다”며 “예금금리가 너무 낮아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고 싶은데 또 손해 볼까 두렵다”고 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익률이 높은 자산이 거의 매년 바뀌고 투자 스펙트럼(범위)도 국내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투자자들은 불과 1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재테크 혼란기에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1년마다 바뀌는 재테크 지도
19일 동아일보 경제부와 미래에셋자산운용이 2000∼2012년 국내주식·채권, 해외주식·채권, 예·적금, 서울 강남 부동산 등 자산 9개에 투자했을 때 연간 수익률을 산정한 결과 2008년 금융위기 후 수익률 1위 자산이 매년 달라진 것으로 파악됐다. 자산유형별로도 2007년 위험자산→2008년 안전자산→2009년 위험자산→2010∼2012년 안전자산 순으로 오락가락했다.
2007년까지는 대표적 위험자산인 주식이 대세였다. 2003년부터 세계경제 호황과 저금리 기조로 주식시장이 황금기를 맞았던 덕분이다. 특히 브릭스를 비롯한 신흥시장 주식이 크게 각광받았다.
2008년이 되자 주식은 수익률 1위 자리를 안전자산에 속하는 국내채권에 내주었다. 금융위기로 주가가 반 토막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해에는 이내 주식이 채권 수익률을 앞질렀다.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던 증시가 빠르게 반등한 결과였다. 당시 증시가 반등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고 세계 경제가 다시 주저앉으면서 주가는 더이상 오르지 않았다. 주요국 화폐가치가 하락하자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을 사려는 수요가 몰렸다. 이에 따라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금은 2010년 최고의 투자자산이 됐다.
금도 내내 기세를 이어가지 못했다. 값이 너무 올라 투자매력이 떨어지자 2011년 하반기(7∼12월) 무렵 꺾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해외채권이 주식보다 안전하고 예금보다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투자처로 여겨지면서 수익률 왕자 자리에 올랐다.
○ 기대 수익률은 계속 낮아져
투자시장에서 수익률 1위를 유지하는 기간이 1, 2년으로 짧아진 것은 2000년대 초반과 사뭇 다른 양상이다. 당시만 해도 적어도 3, 4년간 한 가지 자산의 인기가 지속됐다. 2000∼2003년에는 부동산, 2003∼2007년엔 주식이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수익률이 예전보다 현저히 낮아진 점도 금융위기 뒤 생긴 특징 중 하나다. 해외채권으로 올릴 수 있는 수익률은 예전에 주식·부동산 투자 등으로 올리던 수익률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2001년 강남 지역 부동산을 산 투자자는 1년 만에 30%의 수익을 거뒀다. 2003년 브릭스 주식을 매입한 투자자 역시 1년 뒤 46.1%의 수익을 챙겼다. 브릭스 주식 수익률은 2005, 2006년에도 40%대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동일한 투자자산이라도 수익률이 갈수록 낮아지는 것은 금융위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전문가는 “최근 1, 2년간 재테크 목표는 중(中)위험 자산에 투자해 중(中)수익을 올리는 것”이라며 “수익률이 10% 정도만 돼도 투자를 잘했다는 얘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은행 금리에 플러스알파(+α) 정도만 올려도 만족해야 한다는 뜻이다.
○ “묻어 두고 잊어라는 말 안통하는 시대”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 회복이 불투명하고 저성장시대가 찾아와 수익률이 높은 투자자산이 계속 바뀌고 전반적인 수익률이 낮아지는 현상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준용 미래에셋자산운용 금융공학부문 대표는 “세계 경제가 예전보다 더 긴밀한 관계 속에서 움직이는 가운데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중국경기 둔화 우려 같은 굵직한 경제 이슈들이 계속 불거지며 투자시장의 불확실성까지 세계화됐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주요국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쏟아낸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흘러들면서 경제의 기초체력보다는 자금 쏠림에 따라 수익률이 출렁이는 양상이 펼쳐지며 자산 시장의 방향을 예측하기가 더욱 힘들어진 점도 있다.
재테크시장의 내년 전망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앞으로도 당분간 해외채권이 우세하다는 의견과 주식이 다시 뜰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해외채권 우세론자는 “세계 경제가 회복되는 모습이 아직 확실치 않다”는 점을 내세운다. 반면 주식 우세론자는 “미국 등 주요국이 풀어낼 자금 중 일부가 신흥시장 주식으로 몰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테크 암흑기’에서 기존 재테크의 법칙을 맹신하면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백혜진 삼성증권 역삼중앙지점장은 “‘묻어 두고 잊어라’는 말이 통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요새는 더 잘되는 것으로 빨리 갈아타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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