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을 주름 잡던 두 기업의 희비가 엇갈렸다. 두 회사 모두 사업의 존폐(存廢)를 위협하는 큰 위기에 맞닥뜨렸다. 한 회사는 기존 주력 사업에 매달리다 결국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다른 회사는 기존 사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적극적인 대응으로 살아남았다.
필름 카메라 시대의 종언(終焉)을 맞은 2000년 초 미국의 코닥과 일본 후지필름의 이야기다. 판이 통째로 바뀌는 위기상황에서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180도 달라진 사례는 이밖에도 수없이 많다.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장기화된 가운데 위기를 맞고 있는 국내 기업들도 이처럼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로에 놓여 있다. 기업들은 체질을 완전히 바꿀 정도의 혁신과 과감한 도전이 아니고서는 위기를 헤쳐 나가기 어렵다고 보고 신발끈을 동여매고 있다.》 ○ 체질 개선에 나선 기업들
‘벤처 DNA를 수혈하자.’
제조기업으로는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일본의 도요타자동차 정도만 밟아본 연 매출 200조 원 고지 달성을 앞두고 있는 삼성전자는 최근 조직개편에서 ‘벤처 DNA’라는 카드를 새로 꺼내 들었다.
누구든지 사내 벤처를 제안해 독립할 수 있도록 ‘C-랩’ 조직을 만들고 사외 벤처를 육성할 액셀러레이터팀도 신설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같은 ‘혁신의 중심지’에 조직을 만들어 새로운 성장사업을 인수합병(M&A)하는 오픈이노베이션센터도 만들었다.
전자업계에선 “삼성전자가 덩치가 커진 기존 사업부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변신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마트폰과 반도체, TV 등 기존 사업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의 싹을 맨땅에서 틔우는 벤처 DNA를 수혈해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넣겠다는 의지라는 해석이다. 과거 M&A에 소극적이었던 삼성그룹은 최근 완전히 체질을 바꿔 소프트웨어, 반도체 설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M&A에 나서면서 이 같은 전망을 현실화하고 있다.
위기 속 기업들은 이처럼 외부 수혈과 내부 혁신 등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감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LG그룹 내에서도 ‘뼛속까지 변하자’는 다짐이 자주 나온다. 스마트폰 사업 부진으로 맞은 위기를 벗어나 ‘전자명가(電子名家)’의 명성을 되찾으려면 과감한 투자와 엄정한 신상필벌(信賞必罰)로 시장 선도사업 육성에 ‘다걸기(올인)’해야 한다는 움직임이다.
LG전자는 3차원(3D) TV와 롱텀에볼루션(LTE)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연구개발(R&D) 인력과 시장에서 성과를 낸 임직원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고 있다. LG화학은 전기자동차 배터리와 중대형 에너지저장시스템(ESS)을, LG유플러스는 LTE 서비스를 통해 시장 선도사업자의 지위를 되찾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SK그룹은 아예 그룹 경영의 틀을 바꾸는 실험에 나섰다. 그룹 회장이 계열사의 투자와 인사를 모두 결정하는 기존의 그룹 경영 시스템을 버리고 권한을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에 과감히 이양하겠다는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오너 경영인은 그 대신 터키, 태국 등 신흥시장에 공동 투자할 파트너를 찾아 과감한 글로벌 성장 전략에 시동을 거는 역할에 주력하면서 위기 극복을 이끌겠다는 계획이다.
○ 신흥시장 진출에 다 걸기
“달리는 자전거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최근 기업들 사이에선 김대중 정부 때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강봉균 전 국회의원의 발언이 화제였다. 성장을 멈추는 순간 기업의 미래는 물론이고 국가경쟁력도 정체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선진국과 국내 시장에서 계속되고 있는 저(低)성장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성장 속도가 빠른 신흥시장에 과감하게 뛰어들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브라질, 중국, 인도, 터키, 러시아 등 신흥시장 현지 생산 네트워크를 완성해 글로벌 성장 채비를 마쳤다. 유연하게 생산라인을 가동해 예상치 못한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 동시에 성장률이 높은 신흥국 시장에 맞는 ‘맞춤형’ 생산 전략을 가동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을 통해 진출한 에너지 사업이 내년 본 궤도에 오르며 위기 극복의 엔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주도하는 미얀마 가스전은 내년 중 상업생산을 시작하며 수천억 원의 매출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서비스 산업 분야에서도 거침없는 신흥시장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롯데그룹은 내년 경영의 키워드를 글로벌 경영으로 삼아 베트남, 러시아, 인도, 중국, 인도네시아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그룹은 중국 진출 5년 만에 롯데마트의 현지 점포 수를 100개 이상으로 늘렸고 베트남에도 점포를 잇달아 열면서 국내보다 해외의 점포 수가 더 많은 본격적인 글로벌 사업체로 변신했다.
SPC는 중국, 베트남으로 눈길을 돌렸다. 지난해 11월 중국 난징(南京)에 처음 진출한 파리바게뜨는 올 8월 중국에서만 100호 점을 넘기는 등 2015년 20개국 1000개 매장을 목표로 거침없는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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