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80 클럽, 앞으로 5년에 달렸다]<2> 서비스업 비중 7%P 더 올리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4일 03시 00분


美서 성공한 컴투스처럼… IT-의료 고부가 서비스를 키워라


“1인당 4만 달러가 넘는 국민소득, 인구 3억1000만여 명의 거대한 시장. 이 두 가지가 세계적 경제위기에도 ‘아메리칸 드림’을 가능케 하는 힘입니다. 스마트폰용 게임이라는 콘텐츠로 승부해 성공을 거두기까지 이곳에서 5년이 걸렸지만 다른 곳이었다면 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한국 게임업체 컴투스의 임동욱 미국지사장은 실리콘밸리가 가진 ‘힘’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업체는 2003년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의 중심지에 미국 지사를 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의 최고급 주택가 로스알토스 샌드힐 거리. 벤처기업의 ‘자금줄’인 벤처캐피털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5년의 연구와 현지화 작업 끝에 2008년 선보인 스마트폰 게임 ‘이노티아’는 애플 앱스토어 롤플레잉게임(RPG) 다운로드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홈런배틀’(2009년), ‘슬라이스 잇!’(2010년) 등 내놓는 게임마다 줄줄이 앱스토어 상위권을 차지해 미국 내에서 스마트폰 게임의 ‘성공 신화’가 됐다.

한국이 전 세계 선진국 중 미국 독일 일본 3개국만이 달성한 40-80클럽(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인구 8000만 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열쇠 중 한 가지가 콘텐츠 분야를 비롯한 의료 교육 IT 법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는 데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견이 없다. 이를 통해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58% 수준인 서비스업 생산 비중을 선진국들과 비슷한 65%까지 빠른 속도로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 서비스업 육성 위한 생태계 만들어야

지난해 12월 11일부터 이틀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애플리케이션 전시 콘퍼런스 ‘앱네이션’. 결혼 준비 업체인 ‘메리매리’, 3차원 게임 업체 ‘플래너리’, 인터넷게임 업체 ‘판갈로’ ‘컴투스’ 등 한국의 콘텐츠 업체들이 참여해 미국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KOTRA 실리콘밸리무역관의 권중현 관장은 “다른 나라 업체들과 비교해도 한국 기업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돋보였다”면서 “이들 중 몇몇은 실리콘밸리에서 좋은 바이어와 능력 있는 투자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미국 IT, 콘텐츠 분야의 경쟁력은 혁신적 아이디어나 기술에 투자하고, 육성(인큐베이팅)해 기업으로 키워내는 실리콘밸리의 ‘벤처 생태계’에서 나온다. 창업가와 투자를 맡는 벤처캐피털, 고급 인재와 혁신 기술을 끊임없이 공급하는 대학이 유기적인 관계를 통해 이 생태계를 지탱한다.

스탠퍼드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를 중심으로 하는 ‘산학협동 시스템’은 실리콘밸리의 벤처생태계를 뒷받침하는 큰 축이다. 스탠퍼드대 기술경영센터장이자 산학협동 업무를 총괄하는 리처드 대셔 교수는 “학교와 학생이 유기적으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학교는 여러 창업 지원 프로그램과 인큐베이터를 제공하고,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혁신조직을 결성해 아이디어를 내는 시스템이 정착돼 있다”고 말했다.

중장기적으로 40-80클럽으로 도약하기 위해 한국이 반드시 갖춰야 할 시스템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되는 ‘40시대’로 나아가려면 제조업 수출에 치중한 성장이 벽에 부딪혔을 때 높은 부가가치와 임금 수준으로 국민의 소득을 끌어올릴 고급 서비스업만이 해답이 된다. 통일이 돼 8000만 명의 인구 수준이 되기 전까지 좁은 내수시장을 극복할 수 있도록 서비스업의 글로벌 수출 경쟁력을 갖추는 것도 급선무다.

박병원 서비스산업총연합회 회장(은행연합회장)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은 노하우나 브랜드 파워의 중요성이 제조업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발전시키기 어렵다”며 “고급 서비스업의 싹을 틔워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근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규제를 해소하고 정부의 역량을 집중해 서비스 산업이 급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서비스업 비중 60% 벽 넘어야 선진국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국가들은 하나같이 서비스업의 GDP 대비 비중이 높다. 제조업 강국이라는 독일, 일본도 각각 69%, 65%다. 프랑스와 미국은 77%에 이른다. 제조업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부품소재 및 첨단제품에 집중하고 금융, 교육, 의료 등 서비스업에서 경제생산의 큰 부분을 일궈내는 게 선진국의 특징이다.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의 텍사스메디컬센터(TMC)는 의료 서비스업이 얼마나 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세계 최대의 의료복합지구인 TMC에는 세계 최고의 암 전문병원인 MD앤더슨암센터 등 26개 병원, 50여 개의 각종 의과대, 연구소 등이 있다. 단지 여러 병원이 이웃해 있는 수준이 아니다. 연간 710만 명의 내국인 환자와 1만7000명의 외국인 환자가 몰려와 호텔, 간병, 쇼핑 등 이들을 위한 각종 서비스업이 지역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 TMC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140억 달러. 휴스턴 지역 경제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의 서비스업 비중은 60%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의료 관광 교육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은 2000년대 초부터 줄곧 나왔지만 정부가 규제에 손을 대려고 할 때마다 번번이 해당 이익단체 및 기존 종사자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도입은 정부가 10년 전부터 추진한 끝에 지난해에야 겨우 경제자유구역 내에 설립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럼에도 실제 설립은 요원하다. 국제학교도 제주 국제학교, 송도의 뉴욕주립대 대학원 정도를 제외하면 비싼 학비에 따른 계층 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로 내국인 입학 제한 등 규제의 장벽이 여전히 높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IT와 문화, 콘텐츠 서비스 산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창조경제’를 육성하겠다고 강조했다. 제조업, 토목 위주의 산업정책에서 처음으로 ‘패러다임 시프트(전환)’를 할 절호의 기회다.

박 당선인은 또 서비스업 분야의 연구개발(R&D) 및 진흥의 주축이 될 미래창조과학부(가칭) 설립을 공약했다. 아직 국내 서비스 산업의 토대가 허약한 만큼 정부가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야만 서비스업 강국의 꿈은 실현될 수 있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중현 경제부 차장

▽팀원
김유영 이상훈 문병기 황형준 유성열 경제부 기자, 박형준 도쿄 특파원
현대경제연구원 공동기획
#컴투스#서비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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