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건축의 산실 ‘공간’ 끝내 부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5일 03시 00분


故김수근씨가 1960년 설립한 회사, 부동산 침체로 추락… 법원 내주 ‘회생’ 여부 결정

공간건축이 설계한 건축물들. 왼쪽부터 경동교회(1982년 완공), 서울올림픽 주경기장(1984년), 서울중앙우체국청사(2008년). 공간건축 제공
공간건축이 설계한 건축물들. 왼쪽부터 경동교회(1982년 완공), 서울올림픽 주경기장(1984년), 서울중앙우체국청사(2008년). 공간건축 제공
한국의 1세대 건축설계업체로 꼽히는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공간건축)가 최근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부동산 장기불황의 여파가 설계업계 등 연관 분야로 급속히 번지고 있는 것. 특히 건축설계업계를 대표하는 원조 격인 공간건축의 추락은 건축업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4일 건축업계에 따르면 공간건축은 지난해 12월 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데 이어 이달 2일 부도를 냈다. 법원은 다음 주 기업회생절차 개시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한국 건축설계의 거장인 고 김수근(1931∼1986)이 1960년 설립한 공간건축은 6·25전쟁 직후 황무지에서 한국 현대 건축의 토대를 닦았다. 김원 승효상 등 60대 이상 주요 건축가들의 절반가량을 배출해낸 산실이기도 했다.

국내 건축설계업계를 상징하는 업체답게 공간건축은 50년 동안 서울 충무로 경동교회, 남산타워호텔을 비롯해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 서울법원종합청사 등 주요 건축물을 다수 설계했다. 특히 담쟁이덩굴과 검은 벽돌, 투명한 유리가 어우러진 서울 종로구 원서동 공간건축 사옥은 현대건축물의 백미로 꼽힌다.

공간건축은 외환위기 이후 일반 건축물과 해외시장에 눈을 둘렸다. 특히 각종 기관의 청사, 문화회관 등 공공건물 수주에 치중하며 2000년 이후 서울 중앙우체국청사, 용산구청사, 마포구청사, 경기 고양아람누리, 제주 4·3평화기념관 등을 설계했다.

그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 침체로 공공 건축물 수주가 어려워지면서 경영난에 시달렸다. 지난해 7월 자회사인 ‘공간사’에 매년 5억 원씩 지급하던 지원금을 끊어 1966년 창간한 국내 최고(最古) 종합예술전문지 ‘공간(SPACE)’이 폐간 위기를 겪기도 했다.

특히 최근 무리하게 뛰어든 리비아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중동 시장에서 용역 대금을 회수하지 못했고, 서울 서초구 양재동 파이시티(옛 화물터미널) 복합물류단지 개발사업에 참여했다가 설계비용을 받지 못하자 자금 사정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공간건축이 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550억 원가량으로 금융계는 추산한다. 공간건축 관계자는 “건설경기 위축 등으로 직원 월급을 제때 못 주는 대형 설계회사가 많다”고 말했다.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 건축사무소 1곳당 설계업무를 따낸 실적이 평균 3건이 안 된다”면서 “국내 건축사 1만여 명 중 60%가 한 해에 1건꼴로 설계를 맡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장기화할 조짐이 뚜렷해지면서 설계업계 등 연관업계의 밑바닥 경기가 더 얼어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높아지고 있다.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공간건축의 부도는 김수근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의미”라고 평가했다.

정임수·이진영 기자 imsoo@donga.com
#공간건축#부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