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답다. 하지만 먹기 위한 음식은 아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플로라’의 오너 셰프인 조우현 대표(50)가 2004년 싱가포르 국제요리대회에 출전했을 때 들었던 심사평이다. 국내 요리대회는 출전하기만 하면 최우수상을 받다시피 했던 그였다. 실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는데 ‘먹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니…. 》 세계 무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국내에선 미처 경험하지 못한 선진 요리의 트렌드와 정신이 있었다. 국내 정상급 요리사라는 명성에 안주하는 대신 험난한 도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사비 들여 세계요리대회 참가
조 대표는 이후 세계요리대회에 단골로 출전했다. 미국으로, 터키로, 러시아로…. 많을 때는 1년에 서너 차례씩 나가기도 했다. 그렇게 나간 대회가 지금까지 줄잡아 30여 회에 이른다. 준비 비용은 아시아지역 대회는 500여만 원, 유럽지역 대회는 1000만 원이 넘게 든다. 한두 번을 빼고 대부분 사비를 털었다. 매년 평균 3000만 원 정도를 썼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식을 세계 최고의 요리로 인식시키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대회에 참가하는 것은 몇년 치 공부를 한꺼번에 몰아서 해 시험을 보는 것 같다. 긴장감이 극에 달하고 시간은 늘 부족하다. 초창기에는 현지에서 식재료를 구해 써야 했다. 더구나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든든한 스폰서도, 잡일을 해줄 보조도 없었다. 혼자 커다란 박스를 지고 대회장을 분주하게 오갔다. 외국 요리사들이 “크레이지 코리안 보이”, “군대 스타일(Army Style)”이라고 비웃듯 불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팀장으로서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했던 2008년 독일 세계요리올림픽 때는 현지 식약청이 300가지 이상의 식재료와 기자재 등 1t이 넘는 소품의 반입을 끝내 거부하기도 했다. 현지에서 부랴부랴 재료를 조달해 출전한 대회에서 한국팀은 은상과 동상을 수상했다.
2005년 러시아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했을 때는 2000여 명의 관객 앞에서 한국말로 수상소감을 밝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응원가였던 ‘오 필승 코리아’도 불렀다. 상을 받고 뿌듯한 느낌으로 레드카펫을 걸어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이 일을 평생 해야겠구나.’
○ 창작요리 만드는 것 자체도 도전
세계대회에 단골로 나가면서 터득한 게 있다. 해외에서 통하려면 외국인들이 익숙한 음식에 한국 스타일을 10∼20%만 가미해야 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한식인 떡볶이를 만들 때 소스에 고추장을 20%만 쓰고 나머지는 토마토소스를 넣었다. 끈적이는 느낌을 싫어하는 외국인들을 감안해 쌀떡 대신에 조랭이 떡과 쇼트 파스타를 썼고 새송이버섯, 아스파라거스, 브로콜리를 가미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9년 태국 세계요리대회에서 조 대표가 만든 떡볶이를 먹으려는 줄이 100m 넘게 이어졌다.
중국 식재료와 요리법을 이탈리안 음식에 적용한 ‘상하이파스타‘, 초고추장에 절인 유자를 얹은 ‘연어구이’처럼 익숙한 재료로 창의적인 작품을 만든 비결도 도전정신에 있었다. 다양한 시도를 겁내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 대표는 “준비 과정에서 엄청난 식재료를 버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요리가 전공인 조 대표는 2009년 ‘칼국수와 빈대떡’ 가게에 이어 2011년 ‘북촌가마솥 설렁탕’ 가게를 차렸다. 이유는 한식을 더 잘 알기 위해서였다. 레스토랑 블랙스미스의 고문으로 참여한 것도 조그만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로선 한식 세계화를 위한 창작 메뉴를 보급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게 블랙스미스의 인기 메뉴인 미역국파스타와 꽃피자다.
○ “70세까지 세계대회에 참가하겠다”
조 대표는 고생 끝에 개발한 레시피를 후배들에게 모두 공개한다. 이것도 스스로 도전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올해 상반기(1∼6월) 일정도 빡빡하다. ‘요리의 제왕’으로 추앙받던 오귀스트 에스코피에를 기리는 에스코피에요리연구회 한국지부 소장 자격으로 이달 마카오로 떠나 아시아 8개국 임원들과 미팅을 한다. 5월에는 홍콩 국제요리대회에 참가한다. 서울현대조리학교 제자들도 열심히 가르칠 계획이다.
조 대표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어떤 일이든 끈기를 갖고 일정 기간 혼신의 힘을 다해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느끼는 아픔에 기성세대가 공감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젊은이들 스스로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도전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 대표에겐 물리적 나이가 아니라 도전하는 삶, 그 자체가 청춘이다. 그는 70세가 될 때까지 앞으로 20년은 세계대회에 계속 출전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그 밖에 또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정말 맛있는 짬뽕집을 차리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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