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6> 음주보다 위험한 ‘딴짓’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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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깜짝할 새 ‘쾅’ 운전 중 전자기기 사용은 집중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눈 깜짝할 새에 두 차례 사고가 나기도 했다. 기자가 도로 상황과 비슷한 자동차 시뮬레이터에 타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눈 깜짝할 새 ‘쾅’ 운전 중 전자기기 사용은 집중력을 크게 떨어뜨렸다. 눈 깜짝할 새에 두 차례 사고가 나기도 했다. 기자가 도로 상황과 비슷한 자동차 시뮬레이터에 타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그 작은 DMB 때문에 우리 딸을 잃다니 기막힐 노릇 아닙니까.”

유가족 대표인 박정태 씨(47)는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8개월 동안 일도 못하고 술에 빠져 살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5월 경북 의성군 단밀면 낙정리 국도 25호선 도로에서 25t 화물차가 훈련 중이던 상주시청 사이클 선수단을 덮쳤다. 이 사고로 박 씨의 딸 은미 씨 등 20대 여자 선수 3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쳤다. 운전자가 DMB를 시청하다 길가에서 훈련 중인 선수들을 보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박 씨는 “나도 25t 화물차 운전사지만 DMB가 사람 목숨을 앗아갈 거라곤 생상도 못했다”면서 “도로에서 DMB 보는 운전자가 여전히 눈에 많이 띄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
○ 도로의 ‘눈가리개’ 휴대전화


운전 중 딴짓을 하면 얼마나 사고 위험이 커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4일 경기 화성시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소에서 실험을 했다. 실제 도로와 비슷한 환경으로 꾸민 자동차 시뮬레이터에 기자가 직접 탄 뒤 주행 중 △문자메시지 확인 후 답장 보내기 △내비게이션 조작 △전화 통화 △DMB 시청 등 4가지 ‘반칙 운전’을 해봤다.

시뮬레이터에 앉아 시속 60km로 운전을 시작했다. ‘띠리링.’ 스마트폰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잠금 패턴을 ‘휙’ 풀어내고 보니 연구소에서 ‘운전 중이시죠?’라고 보낸 문자다. ‘네’라고 답장을 보냈다. 오른손으론 스마트폰을 작동했고 왼손으로 운전하면서 눈을 ‘아주 잠깐’ 스마트폰 쪽으로 두세 번 내리깔고 문자 주고받기 성공. 걸린 시간은 단 4초. ‘문자질 운전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화면 오른쪽에서 갑자기 승용차가 끼어들었다. 한손만으론 핸들이 재빨리 돌지 않았고 당황한 기자는 스마트폰을 손에 꽉 쥘 뿐 브레이크를 밟지도 못했다. 곧이어 ‘충돌 사고 발생’이라는 붉은색 글씨가 화면에 뜨고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 충돌음이 울렸다.

실험을 진행한 조정일 연구원은 “운전 중에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반응시간을 35%나 늦춘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음주운전(12%)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운전 중 전화 통화는 상대적으로 앞을 잘 살피며 운전한다고 착각하기 쉬웠다. 하지만 시선 분포를 나타내는 점은 운전에만 집중할 때와 달리 사방으로 정신없이 흩어져 찍혔다.

○ 기억력 빼앗는 내비게이션

정신을 가다듬고 ‘운전 중 내비게이션 조작’을 실험했다. 주행하면서 ‘최근 검색지’ 카테고리를 눌러 길 안내를 시작했다. 소요 시간은 6초. 간단한 조작이라 사고는 없었다. 하지만 잠깐이라고 생각한 6초 동안 어느 쪽에서 차량이 끼어들었는지, 속도를 높였는지 등 주행 상태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 사이 달린 거리는 무려 100m. 축구장 길이(110m)와 비슷한 거리를 눈 감고 이동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을 듣자 등에서 땀이 흘렀다.

마지막은 DMB 시청 실험. 처음엔 ‘소리만 들으며 운전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흥미로운 장면이 나오자 어느새 시선이 살짝살짝 DMB에 쏠렸다. 이 때문에 50m 앞 사고로 정차해 있는 차량을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기까지 했다. 단 3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DMB를 보지 않았다면 차로를 바꾸거나 브레이크를 밟는 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는 ‘면허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1% 상태로 운전할 때 전방주시율이 76.5% 수준이었지만, DMB를 보며 운전할 때는 50.3%까지 뚝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했다.

○ 차량 내로 밀려드는 ‘위험한 동반자’

스마트폰 DMB 내비게이션 등 운전자의 눈을 잡아끄는 각종 전자기기들이 차 안에 자리 잡으면서 ‘운전 중 딴짓’은 이미 대한민국 운전자의 ‘동반자’가 돼버렸다.

김모 씨(23)는 얼마 전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다 큰 충돌 사고를 냈다.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려던 순간이었다. 메시지를 확인하던 김 씨는 교차로 신호가 적색불로 바뀌는 걸 미처 못 봤다. 오른쪽 도로에서 녹색 신호로 바뀐 걸 보고 출발한 차가 김 씨 승용차 조수석을 들이받았다. 김 씨는 오른쪽 팔 다리에 골절상을 입었고 상대 차량 탑승자 2명은 중상이다.

하지만 운전자 대부분이 운전 중 딴짓의 심각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국토해양부가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운전 중 어떤 행동이 가장 위험한가’라고 묻자 전체의 44%가 졸음운전, 43%가 음주운전을 꼽았다. 졸음이나 음주보다 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휴대전화 사용’이라고 답한 사람은 4%, ‘DMB 시청’은 단 1%에 불과했다.

박천수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운전자 대부분 앞을 잘 보면서 간다는 착각에 빠져 위험성을 과소평가한다”면서 “이런 행동은 ‘눈을 감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시동 꺼! 반칙운전] 음주보다 위험한 ‘딴짓’

[채널A 영상] 운전자 10명 중 6명 “운전 중 DMB 시청”

[채널A 영상] DMB보며 운전하다…화물차, 사이클선수단 덮쳐
▼ 싱가포르, 운전중 통화땐 최고 6개월 징역 ▼

교통문화 선진국들은 ‘운전 중 딴짓’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

싱가포르는 운전 중 핸즈프리 기기 없이 휴대전화로 직접 통화한 운전자에게 초범이어도 최고 징역 6개월에 처할 수 있게 해뒀다. 벌금 1000달러(약 86만 원)는 별도다. 두 번 이상 적발되면 벌금도 두 배로 높아지고 면허 취소와 휴대전화 압수 등의 추가 벌칙을 받는다. 한국이 핸즈프리 기기 없이 통화하면 차종에 따라 6만∼7만 원의 범칙금과 벌점 15점을 부과하고 마는 것과 대조적이다.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 시청은 여러 나라에서 제법 강하게 규제한다. 미국은 현재 워싱턴 주를 포함한 38개 주에서 운전자 시야 안에 TV 같은 ‘화상용 표시장치’를 설치하는 것조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위반하면 범칙금으로 100달러를 내야 한다. 호주에서는 차량이 멈춰 있더라도 DMB 화면을 켜면 225호주달러(약 25만 원) 상당의 벌금을 부과해 사실상 장착을 규제한다. 영국은 운전 중 DMB 화면을 보면 최고 1000파운드(약 170만 원)까지 범칙금을 부과한다.

한국은 내장형 DMB의 경우 주행중 작동되지 않도록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운전자가 이를 불법 개조해 운전 중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관련 내용을 담은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올 3월부터 운전 중 DMB를 작동시키기만 해도 범칙금으로 최고 7만 원이 부과된다. 하지만 금액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 법제화가 된다 해도 경찰이 차량 안에서 벌어지는 딴짓까지 일일이 단속하기가 어려워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공동기획: 경찰청·손해보험협회·한국교통연구원·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안전공단

#운전중 통화#싱가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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