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 중견 건설사의 차모 차장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원래 근무했던 개발사업부가 없어지면서 부서 직원 중 절반 이상이 퇴직했고, 자신은 간신히 살아남아 주택영업팀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건설경기가 더 어려워지면서 회사 안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 회사를 떠나는 동료가 늘고 있다. 1년 전 그만둔 옆 팀 과장은 재취업이 안 돼 대리운전을 시작했다는 소식마저 들려온다. 차 차장은 “남의 일 같지 않아 밤잠을 설친다”며 한숨지었다.
건설업계 장기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구조조정 칼바람이 매섭다. 중견 건설업체들이 구조조정을 상시화한 지는 오래, 이젠 대형 건설사로 구조조정이 확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러다간 건설업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 1년새 대형·중견 건설사 42% 감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업계는 하루도 좋은 날이 없었다.
10일 건설산업연구원이 시공능력평가 100대 건설사의 구조조정 현황을 조사한 결과 2008년 이후 23곳이 인력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말 1만1503명이던 23개 기업의 상시근로자 수는 2011년 말 8569명으로 급감했다. 4년간 무려 25%(2934명)나 인원이 준 것.
유럽 재정위기 한파가 닥친 2011년 이후 칼바람은 더 매서워졌다. 분기별 실적공시를 하는 61개 대형 및 중견 건설사 중 42%(26곳)가 2011년 9월 말 이후 1년 동안 직원을 무려 2200명이나 줄였다. ‘제2의 외환위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특히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이나 기업회생절차가 진행 중인 중견 건설사의 후유증이 심각했다. 지난해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우림건설과 풍림산업은 1년 새 200명 이상이 회사를 떠났다. 2008년 이후로 따지면 풍림산업은 직원의 절반 이상인 560명이 회사를 나갔다. 2년 전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범양건영은 최근 1년간 281명에서 92명으로 직원이 3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한 중견 건설사의 임원은 “인위적으로 줄이기도 했지만 회사가 회생할 수 없다는 절망에다 월급을 제때 못 주는 곳이 많아 자발적으로 떠나는 직원이 많다”고 말했다.
○ 구조조정에도 회복 전망 어두워
최근 대형 건설사까지 인원 감축에 나서면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4위인 GS건설은 최근 1년간 직원이 229명(3.3%) 줄었다. 여기에 지난해 말에는 건축사업본부 주택사업본부 개발사업실을 아예 건축·주택사업본부로 합쳤고 임원 수도 10% 줄였다.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 다른 대형 건설사도 줄줄이 조직 통폐합이나 임원 감원을 단행했다.
문제는 이런 구조조정에도 건설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국내 건설공사 수주액은 지난해 8월 이후 넉 달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내 건설공사 수주금액은 8조4469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0% 가까이 줄었다. 지난해 4대강 사업 등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버팀목 역할을 해줬지만 올해는 굵직한 개발사업 계획도 없는 상황. 대형 건설사의 돌파구가 됐던 해외공사 수주마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민형 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정책연구실장은 “개인 역량보다 주택사업 등 특정 분야에 있는 인력에 대해 획일적으로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어 문제”라며 “건설업은 특히 인재가 중요한데 경력자들이 빠져나가면 인력기반이 무너져 건설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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