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개봉을 앞둔 영화 ‘로봇 앤 프랭크’의 한 장면이다. 영화의 배경은 사람의 일상을 관리하고 돕기도 하는 가정용 로봇이 보편화된 ‘가까운 미래’다. 홀로 노년을 보내는 주인공 프랭크에겐 건망증이 있다. 그런 프랭크에게 아들은 가정용 로봇 한 대를 선물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사사건건 간섭하는 로봇이 영 못마땅하고, 그럴 때마다 로봇은 외려 프랭크를 어르고 달랜다. 사전에 입력된 프로그램만 따른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똑똑한 로봇은 프랭크의 행동을 자신의 두뇌에 입력한 뒤 이에 적응하고,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일상에 젖어든다.
소비자 가전전시회(CES 2013)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이 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아직 상상에 불과할 걸.’
하지만 전시회 현장에서 마주한 새로운 기술들은 이런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 주인의 상태를 읽는 기기들
포크 하나로 과식을 막을 수 있다? 꿈같은 얘기 같지만 이번 CES에 실제로 이런 기능을 하는 기기가 등장했다. 홍콩의 하피라브스라는 업체가 내놓은 ‘하피 포크’가 그것이다. 이 포크는 사람이 얼마나 빨리 음식을 먹는지 자동으로 감지해 평균 식사시간을 저장해둔다.
만약 평균 속도보다 빨리 먹는다면 ‘윙윙’ 소리와 진동으로 이를 사용자에게 알려준다. 식사 정보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전송돼 다이어트를 위한 기록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맞춤형 트레이너인 셈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사람들이 체중을 줄이고 음식을 천천히 먹게 하기 위해 이 기기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가격은 99달러(약 10만 원)이다.
사람의 심장박동 주기를 인식해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기기도 전시돼 관람객들의 관심을 모았다. 몇 초 만에 몸을 따뜻하게 해주거나 식혀주는 옷도 나왔다. 무릎이나 허리 등에 감싸는 방식으로 착용하면 사람의 체온과 주변 기온을 인식해 적절한 온도로 맞춰주는 방식이다.
○ 스마트 홈서비스의 진화
아이디어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다양한 기술도 선보였다. 가장 눈여겨볼 기술은 가전제품들을 손쉽게 관리하고 제어할 수 있도록 돕는 ‘스마트 홈서비스’였다.
이런 기능은 2, 3년 전에도 전시회에 단골로 소개되곤 했다. 하지만 사람이 편하자고 고안한 기술임에도 정작 기능을 익히기 어렵고 기기를 직접 제어하는 것보다 복잡해 외면을 받았다. 올해는 이런 불편함이 해소된 제품들이 대거 전시됐다.
LG전자의 스마트 홈서비스는 스마트폰으로 집안의 냉장고나 세탁기, 오븐 등을 손쉽게 켜고 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외출해서도 빨래가 얼마나 진행됐는지, 오븐에 넣어둔 칠면조 요리가 귀가 시간에 맞춰 마무리될 수 있는지 조절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네트워크의 진화’ 덕분이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PC 등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무선인터넷이나 근거리무선통신(NFC) 등을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 가전제품에서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LG전자 관계자는 “과거에는 기기를 다루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올해 선보인 제품들은 특별한 기술 없이도 쉽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한때 전자제품 전시회의 메인이었던 PC 등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세탁기, 냉장고 등은 ‘스마트’ 바람을 타고 점차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사람의 마음까지 이해하는 스마트TV
사용자에게 적응하며 진화하는 기술은 스마트TV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은 사람의 홍채가 마우스를 대신해 시선이 움직일 때마다 화면이 바뀌도록 한 TV를 선보였다. 이 업체는 뇌파를 인식해 기능을 작동할 수 있는 TV도 전시했다. 사람이 TV 화면에 연결된 게임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여라’라고 생각하면 게임 속 캐릭터가 실제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지만 조만간 상용화되면 많은 사용자가 편리하게 느낄 만한 제품이었다.
삼성전자가 올해 처음 선보인 스마트TV는 실시간 방송 검색과 추천 기능을 지원한다. 사용자가 리모컨에 대고 ‘오늘 뭐 볼만한 프로그램 없을까’라고 물으면 TV가 알아서 소개하는 식이다. 사용자가 기존에 즐겨 보던 방송 정보를 저장해놨다가 맞춤형으로 소개하는 것도 가능하다. 과거에는 정해진 매뉴얼대로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제는 사람들의 사용 정보를 취합해 앞선 사용자 경험을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파나소닉도 스마트TV의 화면을 사용자 마음대로 바꾸고 저장할 수 있는 스마트TV를 내놓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크기나 화질 경쟁 대신 사용자의 취향에 맞춰 편리하게 기기를 작동할 수 있는 기술들이 점차 많이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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