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구워져 나온 따끈따끈한 빵 한 덩이가 있습니다. 나와, 굶고 있는 아이 둘이 쳐다봅니다. 생각해 봅시다. 나 혼자 먹으면 배부르겠죠. 한 명의 아이와 나눠 먹으면 부족할 겁니다. 셋이 나누면 간에 기별도 안 가겠죠.
그래서 우리는 빵 앞에서 싸웁니다.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때로는 싸우는 대신 아이들부터 먹이기도 합니다. 그럴 때 빵 한 덩이는 빵 한 덩이 이상이 됩니다.
이번에는 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지식이 담긴 책 앞에 서 있다고 생각해 보죠. 함께 모여 이 책을 읽는다면 모두 배가 부를 겁니다. 빵 한 덩이를 나누는 결심보다 지식을 나누는 결심은 훨씬 쉽습니다. 그리고 훨씬 쉬운 일이 훨씬 큰 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그렇게 움직이진 않습니다. 11일 미국의 한 젊은 프로그래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름은 에런 스워츠. 올해 겨우 27세였습니다. 웹사이트를 일일이 방문하지 않고도 좋은 블로그의 글을 앉아서 받아 보게 해 주는 RSS라는 블로그 관련 기술을 14세에 만들었던 컴퓨터 신동입니다. 이 청년은 이후 짧은 삶을 인터넷 정보 공유 활동에 바쳤습니다.
그러다 재판에 회부됐습니다. 미국 연방정부 검찰은 이 청년에게 지난해 수백만 달러의 벌금에 35년의 징역형을 구형했습니다. 재판은 올해 4월로 예정돼 있었죠. 스워츠가 무슨 끔찍한 테러라도 저지른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청년은 그저 대학의 학위 논문과 유명 저널의 논문을 모아 놓은 제이스토(Jstor)라는 웹서비스의 논문을 모두 내려받아 자신의 노트북에 보관한 것뿐입니다.
좀 많긴 했죠. 다운로드한 논문이 400만 건이 넘었으니까요. 제이스토가 유료서비스라 이 시스템의 허점을 뚫고 들어간 것도 문제였습니다. 스워츠는 사람들이 돈을 내지 않고도 이 논문을 읽게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게 그의 신념이었죠. 소송이 시작됐습니다. 그러자 스워츠는 곧바로 제이스토에 하드디스크를 반환했습니다. 제이스토도 곧 소송을 중단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래도 도둑질은 도둑질이고, 문서를 훔치는 건 달러를 훔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스워츠가 훔친 논문은 제이스토가 아니라 저자들의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도둑질은 논문을 읽는 게 아니라 표절하는 겁니다. 논문 저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논문이 더 많이 읽히고 더 많이 인용되길 바라죠. 실제로 스워츠가 자살한 직후 많은 교수와 연구자들이 논문을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에서 ‘pdftribute’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논문이 올라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스워츠의 행위가 제이스토처럼 세계의 대학과 연구기관을 위해 시스템을 만드는 비영리기구의 활동을 방해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런 행위를 무조건 두둔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겨우 이런 잘못에 35년 징역형이라뇨?
굶는 조카들을 위해 빵 한 덩이를 훔쳤다가 19년을 감옥에서 보낸 장 발장 이야기를 쓰면서 빅토르 위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문명에는 무서운 시기가 있다. 형벌이 파멸을 선고하는 시기가 그렇다. 사회가 생각하는 인간을 회복할 길 없이 버리고 떠나갈 때, 그것은 얼마나 슬픈 순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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