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사 대표이사가 서강대 경영대학원 출신으로 대선 후보 □□□와 친하다.’ ‘H사 대표는 ○○○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이다.’ ‘P사 전 최대주주의 변호를 담당한 사람이 대선 후보 ◇◇◇ 씨다.’
개인투자자 A 씨가 증권 포털 사이트에 올린 글이다. 그는 지인 4명과 짜고 포털 아이디 6개를 이용해 3800여 차례에 걸쳐 글을 올렸다. 이후 주가가 오르면 미리 사놓은 주식을 팔아 치우는 방식으로 모두 53억 원을 챙겼다. 이들은 친인척 명의로 된 차명 계좌로 주식을 팔았고, 원본 글 작성과 게시, 매매 등 역할 분담까지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지난해 대선 바람을 타고 들썩이던 테마주 거래가 늘면서 A 씨 같은 불공정거래 혐의자들이 590억 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16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금감원이 주식시장의 불공정 거래를 조사한 건수는 243건으로 전년(209건)보다 16.2% 증가했다.
이는 ‘정치 테마주’를 집중 조사한 영향이 컸다. 금감원은 지난해 정치 테마주와 관련된 불공정거래 혐의자 27명을 검찰에 통보했고, 이들이 챙긴 부당이득이 590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주식시장의 부당거래 수법도 교묘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특정 종목을 인위적으로 상한가까지 끌어올리는 ‘상한가 굳히기’가 꼽힌다.
개인투자자 B 씨는 코스닥 상장기업인 안랩(옛 안철수연구소) 등 대선 테마주를 상한가로 매수 주문해 당일 종가를 상한가와 엇비슷하게 끌어올렸다. 사려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한 것으로 다음 날 투자자들이 주식 매수에 나서면 B 씨는 주식을 되팔았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30개 종목의 주가를 조작해 54억 원을 챙겼다.
2011년 9월부터 4개월 동안 60만 회에 육박하는 매매 주문으로 시세를 조작한 사례도 있다. 투자자 C 씨는 여러 계좌를 갖고 1초 단위로 1주씩 테마주에 대해 상한가 매매 주문을 했다. 이런 거래로 일반 투자자를 매매에 끌어들였고 주가가 오르면 이를 팔았다. 그는 이런 식으로 57만1000여 회나 매수 주문을 했고, 2억2000만 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사채업자와 공모해 허위 공시로 부당이득을 챙긴 사례도 있다. 코스닥 상장기업인 스톰이앤에프의 회장은 차명(借名)으로 자기 회사의 공모에 청약했다. 이후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려 주식을 사들인 직후 곧바로 인출해 사채를 되갚았다.
이 회사의 대표이사는 ‘신규 운영자금이 들어왔다’고 공시했고, 언론에 ‘신규 자금이 들어와 경영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들어온 돈은 한 푼도 없었지만 대금이 들어온 것처럼 꾸미는 가장납입을 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주가가 오를 만한 요소를 만들고는 실제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처분해 부당이익 22억 원을 챙겼다.
임병순 금감원 자본시장조사1국 부국장은 “테마주의 주가는 테마가 사라지면 주가 거품도 꺼질 수밖에 없으므로 우량주 위주로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한계기업이 유상 증자를 하기 위해 시세를 조종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기업의 재무상태뿐 아니라 대주주와 관련된 위험 요소를 살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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