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억 원. 국내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이 2011년 한 해 동안 각종 사회공헌활동에 평균적으로 쓴 돈이다. 2004년 54억 원에서 7년 만에 3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500대 기업은 연평균 2003건의 봉사활동도 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8곳 이상(85.8%)은 경기침체 속에서도 사회공헌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사회공헌에 많은 돈을 쓰고 봉사활동 횟수를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동아일보가 서울여대 착한경영센터, 리서치앤리서치(R&R)와 함께한 착한기업지수(GBI) 조사에서 사회공헌비용 규모보다 꾸준하게 공익사업을 해 온 기업이 공익경영 측면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 돈 많이 쓴다고 좋은 평가 받지 않아
공익경영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유한킴벌리는 2011년 사회공헌활동에 43억7800만 원을 썼다. 이 금액이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32%로 500대 기업 평균(0.26%)보다 높지만 지출액의 절대규모는 주요 기업 평균(140억 원)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우정사업본부(우체국택배)의 연간 사회공헌비용은 81억4700만 원, 한국야쿠르트도 50억 원 수준이다.
연말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부금으로만 수백억 원을 내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를 제치고 유한킴벌리나 한국야쿠르트 등을 ‘착한 기업’으로 떠올리는 이유는 뭘까. 시장 1, 2위 대기업에 대한 견제와 반감도 작용했지만 유한킴벌리 등이 사회공헌활동을 장기간 일관되게 해온 점을 인정받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전상경 한양대 경영대 교수는 “무조건 사회공헌 지출을 많이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며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오랜 기간 특정 분야에 공들이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착한 기업으로 꼽힌 기업들은 오랫동안 한 가지 테마의 사회공헌과 공익 경영을 해왔다. 유한킴벌리의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 외에도 우체국택배는 1986년 지역 농가를 돕는 특산품 판매를 시작했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주도하는 한국야쿠르트의 ‘사랑의 손길펴기회’는 1975년부터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 모임이 매년 벌이는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는 지난해 말로 12년째를 맞았다.
○ 일방적 나눔보다 동반성장이 더 중요
설문 응답 내용을 분석해 보면 시혜적인 나눔 경영보다 협력업체 및 소외계층과 함께 성장을 꾀하는 동반성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많았다.
공익경영 부문은 동반성장, 나눔, 친환경 등 세 가지 세부항목으로 평가하는데 설문 응답을 분석한 결과 이 가운데 동반성장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꼽혔다. 아무리 기부금을 많이 내더라도 사업 과정에서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탐욕스럽게 행동하면 착한 기업과 거리가 멀어진다는 얘기다.
동반성장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착한 기업 종합 2위에 오른 우체국택배의 특산물 판매 사업이 대표적이다. 경북지역의 영세 과수농가들은 과거 15kg들이 상자에 사과를 담아 도매상에 팔았다. 싼값에 사과를 사들인 도매상들은 이를 작은 포장으로 바꿔 2, 3배 비싸게 유통시켰다. 사과 값이 올라도 제값을 못 받던 농가의 처지가 바뀐 것은 우체국택배와 인연을 맺어 소비자와 직거래를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였다.
우체국택배는 도시가구가 소비하기 편하게 포장을 5kg 단위로 바꾸고 동네마다 브랜드도 만들었다. 판매 방식을 바꾸자 농가가 손에 쥐는 돈은 갑절로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우체국택배도 사업 규모를 키웠다. 1987년 7억 원에 그쳤던 판매액이 2011년 1967억 원으로 늘어났다. 농가와 우체국택배 모두 성장한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동반성장을 잘 실천하는 기업으로는 우체국택배 외에 한국야쿠르트, 유한킴벌리, 아시아나항공, 농협, SK에너지, 대한항공, 다음커뮤니케이션 등이 꼽혔다.
○ 고객과의 약속 지키는 기업 높게 평가
소비자와의 신뢰도를 측정하는 진정성 경영 평가에서는 우체국택배, 유한킴벌리,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교보문고, 한국야쿠르트, LG전자, 삼성전자, 예스24,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설문 응답자들은 진정성 경영의 세부항목 가운데 소비자와의 약속을 잘 지키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고객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고객 지향성이 두 번째, 품질이나 가격 등 제품 가치가 세 번째였다.
직원들을 존중하는 배려 경영에선 유한킴벌리, 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 한국야쿠르트, 아모레퍼시픽,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다음커뮤니케이션, NHN(네이버), 구글, 애플 등이 돋보였다.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는 시급제 직원도 퇴직금, 4대 보험, 경조금 혜택을 주는 복지 프로그램 덕에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내부 직원들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해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구글과 스마트폰의 강자 애플은 배려 경영에서 상위권에 올랐지만 공익 경영에서 각각 19위, 169위로 밀려난 탓에 전체 착한 기업 순위는 각각 15위, 143위에 그쳤다.
김용석·정지영 기자 nex@donga.com ▼ 삼성 1위 업종 5개 최다… LG는 가전 3관왕 ▼
■ 업종별 1위 기업은
착한기업지수(GBI) 업종별 조사에서 삼성그룹은 42개 업종 가운데 5개에서 1위를 차지해 개별 그룹 중 가장 많은 기업을 1위에
올렸다. 제조업보다는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 강세를 보인 것이 특징이다. 삼성생명이 생명보험, 삼성화재가 손해보험, 삼성증권이
증권 업종에서 각각 착한 기업 1위로 선정됐다. 또 레저·테마파크 업종에서는 에버랜드가, 제조유통일괄형(SPA) 업종에선 제일모직
브랜드인 에잇세컨즈가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생활가전, 정보기술(IT)가전 두 업종에서 모두 LG전자에 밀리며
종합 순위 19위에 그쳤다. 하지만 △제품과 서비스가 믿을 만하다 △최고 품질의 제품(서비스)을 제공한다는 설문 항목에서는
42개 업종, 195개 기업(브랜드)을 통틀어 1위를 차지했다.
LG전자는 생활가전과 IT가전 업종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이 회사의 가전 유통 브랜드인 LG베스트샵이 가전 양판점에서 1위에 오른 것까지 포함하면 LG전자는 개별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3관왕을 차지했다. 내로라하는 경쟁회사들을 제치고 전자 분야 3개 업종에서 가장 착한 기업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LG전자를 비롯한 LG그룹 계열사들은 주로 △사업 이익을 적극적으로 사회에 환원하는가 △친환경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가 △친환경기술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가 등의 질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SK그룹 계열사 가운데선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에너지가 주유소 업종에서 1위를 차지했다. SK에너지는 중소기업 지원,
취약계층 및 소비자와의 동반성장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데 힘입어 전체 착한 기업 순위에서도 종합 11위에 올랐다. 통신
업종에선 SK텔레콤이 1위로 평가됐다. SK텔레콤 자회사인 SK플래닛의 브랜드 ‘11번가’가 오픈마켓 업종 1위에 오른 것을
포함하면 SK그룹 계열 3개 기업이 1위로 선정됐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자동차 업종에서 기아자동차만 1위에 올랐다. 이번 조사가 소비자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B2C 업종 위주였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 분야에선 KB국민은행이 은행 업종에서, KB국민카드가 신용카드 업종에서 각각 착한 기업 1위로 꼽혔다. 서비스의 신뢰성과 품질, 친환경활동에서는 다소 부진했지만 중소기업 지원 등 동반성장 항목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유통 분야에선 신세계그룹이 신세계백화점(백화점 업종), 이마트(대형마트), 스타벅스(커피전문점) 등 1위 기업 세 곳을 배출했다. 하지만 골목상권 침해 논란 등으로 3개 기업 모두 종합순위에선 6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 42개 업종 대표기업 4, 5곳씩 195개 기업 평가 ▼
■ 어떻게 조사했나
동아일보 산업부는 서울여대 착한경영센터,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R&R)와 함께 착한기업지수(GBI)를 만들어 대한민국의 착한 기업을 조사했다.
GBI는 △진정성 경영 △공익 경영 △배려 경영 등 세 부문으로 구성된다. 진정성 경영은 고객과의 약속 실천, 제품(서비스)의
신뢰도 및 품질, 합리적인 가격, 고객 이익 실현, 고객 권익보호 등의 세부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또 공익 경영에선 중소 협력업체
지원, 취약계층과의 동반성장, 이윤의 사회 환원, 사회공헌사업 실천, 친환경 활동, 친환경 기술 및 제품 개발 등을 평가했다.
배려 경영에서는 직원과의 소통, 자율성 보장, 직원 존중과 배려 등의 세부항목을 평가했다.
각각의 세부항목을
반영한 설문지를 만들어 지난해 11월 26일부터 12월 12일까지 전국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59세 이하 소비자
2925명을 조사했다. 국내 증권사의 기업분석 애널리스트 24명을 추가 조사해 설문 결과를 보완했다. 조사 대상 기업(브랜드)은
생활가전, 자동차, 통신, 식품, 백화점, 대형마트, 은행, 보험, 증권, 포털 등 42개 업종의 195개였다. 시장점유율과
인지도가 높은 업종별 대표기업 4, 5개씩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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