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Up]“비 올땐 피자빵을 준비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4일 03시 00분


파리바게뜨, 자체 날씨지수 개발했더니… 매출 30% 늘어

파리바게뜨 서울 강남 본점의 정재엽 점장(30)은 오후 6시가 되면 어떤 제품이 많이 팔렸는지, 남아도는 물량은 없는지 일일이 확인하느라 정신없이 바빠진다. 본사 구매 시스템에 이를 입력한 뒤에는 이틀 뒤 받을 재료도 신청한다.

정 점장은 매장에 비치된 판매시점관리기기(POS) 창을 통해 본사에 재료를 주문할 때 ‘날씨 판매지수’라는 코너를 꼭 살펴본다. 이 코너는 파리바게뜨 전체 매장의 지난 2주간 품목별 평균 매출액이 날씨에 따라 얼마나 변동했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앞으로 3일간 어떤 제품이 많이 팔릴지 예측해 상위 3개 품목을 추천해 준다. 생크림 케이크가 많이 팔릴 것으로 예상되면 이를 수치로 보여줘 재료를 주문할 때 참고하도록 하는 식이다.

지난 주말 정 점장은 피자빵 재료를 평소보다 많이 주문했다. 평소에는 35개 정도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50개로 늘리기로 했다. 21일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피자빵의 매출이 늘 것이라고 알려준 날씨 판매지수 코너의 조언을 충실히 따른 결과다. 비가 오면 집에서 부침개를 만들어 먹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매장에서도 기름기가 있는 피자빵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그는 2주 전 한파(寒波)가 닥쳤을 때에는 차가운 샌드위치 대신 따뜻한 샌드위치 비중을 늘리기도 했다. 보통 9 대 1로 차가운 제품을 많이 만들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따뜻한 것을 찾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라는 날씨 판매지수의 제언에 따른 것이다.

정 점장은 “날씨 판매지수를 활용하면서 팔지 못해 버리는 제품이 크게 줄어들었고, 오후 늦게 매장에 왔다가 찾는 빵이 없어 헛걸음을 하는 고객도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이 이처럼 날씨 판매지수를 도입한 것은 지난해 6월이다. 5년간 169개 지역의 날씨정보와 일별 매출 변화를 분석해 지수로 만들었다. 각 매장이 이를 바탕으로 판매량을 예측하고 재고를 조절할 수 있게 설계했다.

날씨 판매지수를 한 달간 운영한 뒤 피자빵, 소시지빵 등 조리 빵을 샘플로 삼아 판매량을 집계해 보니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수를 활용하는 가맹점주도 점점 많아졌다. 파리크라상 관계자는 “가맹점의 90% 이상이 날씨 판매지수를 점포 운영에 활용하면서 매출이 늘고 영업이익도 개선되고 있다”고 전했다.

홈쇼핑 업체인 CJ오쇼핑도 날씨 정보를 경영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 기업은 민간 기상업체로부터 30일간의 일별 예보와 3시간 간격의 날씨 추이를 받아 상품 편성에 반영한다. 장마철에는 매트, 침구류를 늘리고 폭염이 계속될 때는 에어컨, 냉풍기 등을 하루 2회 이상 집중 편성하는 식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기상정보를 분석해 댐에 유입될 수량을 사전에 예측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홍수 조절에 활용하고 있다. 2009년 7월 등 한강 상류에 많은 비가 내렸을 때에도 사전에 입수한 기상정보 덕분에 미리 댐의 물을 비워 범람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처럼 날씨 정보를 경영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은 아직 많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국내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기상 변화가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89.9%는 ‘기상청 날씨 정보만 확인하는 수준’이라고 답했다. 날씨별로 매출이나 생산, 재고 등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춘 기업은 6.9%, 민간 기상업체로부터 세분화된 정보를 제공받는 곳은 3.2%에 그쳤다.

이렇다 보니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한파가 수일간 지속되거나 여러 차례 폭설이 내렸던 올겨울에는 기업들도 속수무책이었다. 비누, 세제 등을 만드는 A사는 영하 17도의 한파로 중요한 생산설비들이 죄다 얼어붙었다. 이를 복구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매일 제품을 만들어 팔고 재고를 두지 않는 이 업체로서는 하루 매출이 그대로 날아간 셈이다.

공연기획사들도 폭설로 피해를 입었다. 한 인기 뮤지컬은 밤사이 많은 눈이 내리자 100%를 이어오던 예약률이 80%로 내려갔다. 대한상의 조사에 따르면 특히 항공·운송, 오프라인 유통, 보험, 외식 등의 업종이 한파와 폭설로 큰 피해를 본 것으로 조사됐다. 항공사는 비행기가 결항됐으며 운송업계는 도로가 결빙되는 등의 사정으로 물품 배송이 늦어지는 사례가 속출했다. 보험업계는 교통사고, 골절상 등으로 부담이 늘어났고 사람들이 추위 때문에 바깥나들이를 줄이면서 외식업계도 타격을 입었다.

조사 기업의 74.8%는 ‘기상 이변에 대한 마땅한 대비책이 없다’고 답했다. 운송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 차원에서 철저하게 준비해도 폭설 같은 기상 이변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날씨경영 전문가들은 “아무리 자연재해라 하더라도 무방비로 당하는 것보다 날씨 정보를 예측하고 분석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며 “날씨로부터 발생되는 위험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내는 것이 기업 경쟁력 제고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대한상의 박종갑 상무는 “날씨는 이제 유가(油價), 환율, 금리만큼 중요한 경영 변수로 자리 잡았다”며 “기업들은 날씨경영을 도입해 기상 이변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수익 기회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파리바게트#날씨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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