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봤나, 이 벤처기업들… 해외서 먼저 알아보고 눈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일 03시 00분


■ 3D시스템즈코리아-올라웍스 ‘하이테크 성공기’

“3D 소프트웨어 기술 세계 넘버원이에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벤처기업들과 달리 해결이 어려운 기술과제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는 ‘하이테크 벤처’들이 국내에도 늘고 있다. 토종 기술로 3D 소프트웨어 세계 1위가 된 아이너스기술은 지난해 해외기업인 3D시스템즈에 인수됐다. 사진은 허정훈 3D시스템즈코리아 사장(가운데)과 직원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3D 소프트웨어 기술 세계 넘버원이에요”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벤처기업들과 달리 해결이 어려운 기술과제에 도전해 성공을 거두는 ‘하이테크 벤처’들이 국내에도 늘고 있다. 토종 기술로 3D 소프트웨어 세계 1위가 된 아이너스기술은 지난해 해외기업인 3D시스템즈에 인수됐다. 사진은 허정훈 3D시스템즈코리아 사장(가운데)과 직원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박사를 받으면 교수가 되겠지. 교수가 되면 편할 거야. 하지만 너무 단조롭잖아.”

1998년 당시 스물일곱이던 허정훈 3D시스템즈코리아 사장은 피가 끓었다. “내 사업을 한 번 해보자.”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해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던 배석훈 박사(아이너스기술 창업)를 포함한 몇몇 선후배들과 의기투합했다. 주위에선 연구실과 사회는 전혀 다르다며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우리 기술력만큼은 최고잖아?” 지도교수는 컴퓨터설계(CAD)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던 이건우 교수였고, 동료들은 모두 이 교수 연구실의 제자였다. 누구도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아이너스기술이란 회사가 탄생했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처음 이들이 만들어 팔려고 한 건 3차원(3D) 스캐너였다. 기계 속에 사물을 넣으면 3D 컴퓨터그래픽으로 바꿔주는 기계인데 쉬울 리 없었다. 불량이 이어졌고, 품질도 떨어졌다. 제조업은 경쟁도 치열했다. 반년 만에 사업을 완전히 바꿨다. 허 사장은 3D 스캐너에 쓰이는 소프트웨어만 개발하기로 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일본의 자동차업체 혼다가 이 소프트웨어를 사줬다. 미국 소프트웨어보다 훨씬 싼 데다 문제가 생기면 시차가 없는 한국에서 ‘빨리빨리’ 고객서비스를 해주겠다는 점을 높이 산 것이다. 혼다가 고객이 되니 도요타자동차도 고객이 됐다. 소니도 설득했다. 사업은 점차 유럽, 미국으로 확장됐다. 2004년, 창업 6년 만에 아이너스기술은 해당 분야 세계 1위가 됐다. 그리고 2012년 10월, 세계 최대의 3D 프린팅 업체인 미국 3D시스템즈에 인수돼 3D시스템즈코리아로 사명(社名)을 바꿨다.

○ 세계가 탐내는 한국 기업

지난해 4월에는 올라웍스라는 국내 벤처기업이 세계 최대의 반도체업체 인텔에 인수됐다. 올라웍스는 사진을 분석해 얼굴을 인식해주는 영상인식 기술 업체다.

최신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 카메라에는 카메라가 자동으로 사람의 얼굴에 초점을 맞춰주는 기능이 들어 있다. 카메라 속 소프트웨어가 화상을 분석해 얼굴로 판단되는 부분을 찾아주는 것이다. 스마트폰용 반도체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인텔이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 가운데 하나로 사용될 이 기술에 눈독을 들인 것이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독일의 글로벌 소프트웨어업체 SAP의 데이터베이스 기술 ‘하나(HANA)’는 SAP가 한국 기업 TIM을 인수하면서 함께 가져온 핵심 기술로 완성된 것이다. 독자적인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을 개발한 넥스알, 동영상 내용을 분석하는 기술을 가진 엔써즈 등도 2010년 KT에 인수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모두 국내에선 경쟁자도 찾기 힘든 특수한 분야를 연구하던 회사들이다.

이런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벤처 성공신화’를 얘기할 때 등장하는 기업들과는 다르다. 최근 주목을 받는 벤처기업은 주로 스마트폰과 관련된 카카오(카카오톡)나 선데이토즈(애니팡) 같은 회사들이다. 이런 회사들은 타이밍이 성공과 직결된다. 그래서 카카오톡은 4명의 직원이 2개월 동안 만들었고, 애니팡은 직원 수 20명의 회사에서 6개월 동안 만들어냈다. 서비스를 빨리 내놓고 사용자를 빨리 모으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이너스기술이나 올라웍스 같은 회사는 다르다. 이들은 이미 세상에 있는 기술을 가다듬고 응용해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일반적인 벤처와는 달리 실험실에서나 존재하던 기술을 현실에서 구현한다. 이른바 ‘하이테크 벤처’다.

○ 성공 확률 높은 하이테크 벤처

하이테크 벤처의 특징은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신생기업의 5년 후 생존율은 30.2%다. 하지만 부침(浮沈)이 심한 정보기술(IT) 업계가 포함된 금융·보험·출판·영상·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종 분류의 생존율은 25.0%로 뚝 떨어진다. IT 벤처기업만 놓고 보면 이보다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이테크 벤처는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남들이 쉽게 뛰어들지 않는 독특한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창업하는 특성 덕분에 경쟁사가 적기 때문이다. 이런 기업들의 특징은 창업 멤버들이 창업 이전부터 관련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들이란 데 있다. 서울대 이건우 교수 연구실 학생들이 만든 아이너스기술뿐 아니라 올라웍스도 ‘최고’들이 만들었다. 올라웍스는 컴퓨터 시각화 분야에서 국내 최고로 평가받던 KAIST 컴퓨터공학과 석·박사 학생들이 창업했다. TIM도 서울대 차상균 컴퓨터공학부 교수의 연구실이 시작이었다. 넥스알도 KAIST 연구실에서 시작됐고, 엔써즈의 창업자는 포항공대(포스텍) 출신이다. 최고의 기술 인력들이 회사를 세우는 것이다.

이런 창업자들은 스스로의 기술에 자신이 있어서 장기 목표를 세운다. 1, 2년 내에 성과를 보려는 기업과 달리 최소 3년, 길게는 7, 8년을 내다보고 연구개발을 한다. 이런 장기 계획으로 쌓인 특허 등의 연구 성과는 후발주자에게는 자연스레 진입장벽이 된다.

태생부터 글로벌 시장을 노린다는 점도 큰 성공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다. 특수한 기술이라 시장을 넓게 봐야 판로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경쟁사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늘 해외 경쟁사의 동향에 귀를 기울인다. 자연스레 해외 동향에 밝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 대기업의 성공이 이런 하이테크 벤처의 성공에 도움이 되고 있다.

지금은 인텔코리아의 상무가 된 류중희 전 올라웍스 대표는 “LG전자, 팬택 등 세계적인 한국 기업이 우리 기술을 믿고 써준 덕분에 대만의 HTC, 에이서 등도 고객이 됐고, 그러자 해외에서 올라웍스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재선 넥스알 대표는 “100분의 1의 성공 확률을 바라보면서 창업하는 보통 벤처기업과는 달리 하이테크 벤처는 성공 확률을 2분의 1 정도까지 높일 수 있다”며 “사업이 실패해도 그때까지의 특허 등 지식재산이 남고, 직원들의 실력도 늘어 다음 성공의 토양이 된다는 게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에서 대기업들이 하이테크 벤처를 혁신의 동력으로 삼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너스기술이 3D시스템즈의 소프트웨어 시장 진출의 기반이 됐고, 올라웍스가 인텔의 스마트폰 사업을 돕는 것처럼 국내 대기업도 이런 하이테크 벤처 인수로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고영하 엔젤투자협회장은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구글과 애플 같은 기업들은 하이테크 벤처를 인수해 내부 혁신의 기회로 삼는다”며 “국내에서도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하이테크#벤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1

추천 많은 댓글

  • 2013-02-01 11:00:43

    우리나라는 자원보다는 기술력이 우선이죠. 외국에서도 인정받고 너무 자랑스럽네요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