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일 쌍용자동차 사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쌍용차 서울사무소에서 “자동차회사는 5년, 10년을 내다보고 투자해야 한다”며 “정치권에서 국정조사로 자꾸 발목을 잡으면 회사가 다시 일어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요즘 하루 12시간을 ‘과거’와 싸웁니다. 국정조사 문제로 발목을 붙잡혀 2년 동안 쌓은 해외 수출 거래처가 다 무너지게 생겼는데 정치권에서 책임질 겁니까.”
이유일 쌍용자동차 사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쌍용차 서울사무소 집무실에서 기자와 만나기 전 러시아에서 날아온 현지 딜러와 수출가격을 협상하느라 진담을 뺐다. 원화 강세로 수출 가격을 자동차 1대당 평균 300달러(약 32만6190원) 올리겠다고 통보하자 딜러가 “그러면 물량을 1만 대 줄이겠다”며 한국까지 달려온 것이다. 이 사장은 “내가 러시아로 날아가서 상황을 설명해도 모자랄 판에 해외 딜러가 (쌍용차 국정조사 관련) 기사가 실린 영자 신문을 들고 와 ‘회사 사정이 이런데 값을 올리는 게 말이 되냐’며 압박하니 갑갑할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이 사장은 요즘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과거의 유령’과 싸운다고 했다. 28일에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을 찾아가 의원실을 돌아다니며 국회의원들에게 “국정조사 문제를 다시 생각해 달라”고 읍소했다. 집무실로 돌아와서는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그룹에 그날 국회 분위기를 1시간 넘게 전화로 설명했다. 이 사장은 “차를 한 대라도 팔고 다녀야 할 소중한 시간인데 일의 80%는 과거지사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국정조사로 쌍용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지만 쌍용차 노사는 “답은 우리에게 있다”며 제발 정치권에서 그만 흔들라고 항변한다. 국정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마힌드라로부터 투자 유치를 받지 못하면 신차 개발도 차질을 빚게 된다. 끊임없이 신차를 만들지 못하는 자동차회사는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 마힌드라는 올해 투자하기로 했던 1000억 원의 집행을 미루고 있다. 이 사장은 “김규한 쌍용차 노조위원장이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국회의원들한테 ‘쌍용차 전 직원 3500명이 모두 송전탑에 올라가서 시위를 해야 우리 말에 귀를 기울이겠느냐’고 울분을 토할 정도”라고 전했다.
전체 생산물량의 65%를 수출하는 쌍용차로서는 최근 환율 급변동도 악재다. 지난해 쌍용차는 ‘코란도 스포츠’ ‘코란도C’ 등 신차 출시에 힘입어 영업적자 폭을 2011년 1534억 원에서 지난해 800억∼900억 원으로 줄였다. 하지만 올해는 무급휴직자 복직에 따른 인건비 100억 원과 환율 영향으로 1000억 원이 넘는 적자가 날 것으로 이 사장은 전망했다.
현대자동차 출신인 이 사장은 2009년 2월부터 2년간 쌍용차 법정관리인을 거쳐 2011년 3월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쌍용차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 사장은 “2009년 옥쇄파업으로 공장 내 밥그릇이 없어 사장인 나도 일회용 용기에 밥 한 덩이와 제육볶음 한 주걱을 얹어 세 끼니를 때웠다”며 “왜 그만두고 싶지 않겠냐. 하지만 우리 직원들 밥 한번 제대로 먹여주기 위해서라도, 복직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버텨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마힌드라는 올해 이 사장을 그룹의 주요 안건을 결정하는 24명의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으로 선임했다. 정무영 쌍용차 상무는 “대주주가 쌍용차에 대해 갖고 있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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