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이 예고된다. 때가 되면 혼란 속에서 한 나라가 나타나서 세계 선두의 경제 강대국이 될 것이다. 다시 미국이? 일본? 독일? 유럽공동체 전체? 오스트레일리아나 브라질이나 중국 같은 다크호스가? 누가 알겠는가? 나는 모른다.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00’(찰스 P 킨들버거·까치·2004년)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면 자기주장도 없이 참 무책임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당시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경제사 교수였던 찰스 킨들버거였는데, 앞서 언급한 인용문은 책 맨 마지막에 나온다.
킨들버거는 사람이 탄생, 성장, 쇠퇴, 사멸의 생명주기를 갖는 것처럼 국가도 그런 생명주기를 갖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1500년 이후에 어떤 국가들이 세계 패권을 쥐었을까에 대해 답한다. 우선 이탈리아 도시국가인 베네치아, 피렌체, 제네바, 밀라노가 차례로 패권을 쥐었다. 그러다가 대서양으로 건너가 포르투갈, 스페인, 브뤼주, 안트베르펜,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독일이 주도권을 잡았다. 그 후 대서양과 태평양을 양쪽에 접하고 있는 미국과 태평양 국가인 일본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앞으로 어떤 나라가 패권국이 될 것인지 모른다고 했지만 그 역시 폴 케네디처럼 일본을 꼽았다. 이는 당시에 지배적인 견해였고, 둘 다 예측에 실패했다.
2008년 중국은 국영방송인 중국중앙(CC)TV를 통해 ‘대국굴기’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여 1500년 이후 패권국가가 왜 흥하고 몰락했는지를 다루었다. 이 프로그램에 중국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지만 중국이 1500년 전에 전 세계의 패권국가였고 향후 다음 패권국가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넌지시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패권국가가 일본이든 중국이든 둘 다 동아시아다. 그런데 일본과 중국 사이에 있는 동아시아 국가인 한국은 패권국가가 될 수 없는 것일까?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한때 전 세계 10위까지 올랐다가 지금은 14위에 머무르고 있다. 2012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전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에 못 미치는 2.0%를 기록했다. 킨들버거가 2050년에 ‘경제 강대국 흥망사’를 다시 쓴다면 한국을 과연 어떻게 묘사할까? 아마도 현재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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