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조원 태국 물관리프로젝트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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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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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사업자 선정 겨냥 한중일 新삼국지

1월 23일 태국 방콕 시내의 짜오프라야 강 유역에 있는 수상가옥 앞에서 사람들이 둑을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겨울철은 태국의 건기인데도 바로 집 밑까지 강물이 차 있다. 방콕=김철중 기자 tnf@donga.com
1월 23일 태국 방콕 시내의 짜오프라야 강 유역에 있는 수상가옥 앞에서 사람들이 둑을 높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겨울철은 태국의 건기인데도 바로 집 밑까지 강물이 차 있다. 방콕=김철중 기자 tnf@donga.com
1월 20일 저녁 태국 방콕 시의 ‘솜분 시푸드 레스토랑’. 한국농어촌공사와 태국 왕립관개청(RID·Royal Irrigation Department)의 핵심 인사들이 마주 앉았다. 두 기관의 기술교류 세미나를 기념한 자리였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태국 정부의 ‘통합 물 관리 사업’에 대한 한국 측의 참여를 둘러싸고 진행됐다. RID 측 관계자는 “한국의 기술력과 추진력이 매우 인상 깊다”는 칭찬을 쏟아내며 분위기를 띄웠다. 그러나 곧이어 “일본 측 담당자들도 옆 테이블에 와 있다”고 귀띔해 한국 방문단을 긴장시켰다.

총 12조 원 규모의 태국 물 관리 사업을 두고 한중일 3국의 수주 경쟁이 치열하다. 한국이 선점하고 있던 해외건설, 플랜트 수주에 최근 중국과 일본이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세계 곳곳의 입찰 현장에서 ‘한중일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다. 한국 입찰단 관계자는 “이번 사업이 앞으로 펼쳐질 한중일 경쟁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K-팀 ‘몽키칙(Monkey cheek)을 점령하라’


2011년 여름 8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대홍수를 겪은 뒤 태국 정부는 통합 물 관리 사업을 서둘러 추진해 왔다. 이 프로젝트는 방콕을 통해 바다로 빠져나가는 총길이 1200km의 짜오프라야 강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주변에 방수로와 둑을 짓는 게 핵심. 짜오프라야 강 중류의 우묵하게 생긴 거대한 저지대 ‘몽키칙(원숭이 볼이란 뜻)’은 상습 침수지역으로 대홍수 당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한국은 지난해 8월 한국수자원공사, 농어촌공사 등을 주축으로 총 80여 명의 ‘K-팀’을 구성했다. 4대 강 사업을 수행한 현대 대우 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 7곳의 기술자들이 참여한 한국 물 관리 기술의 ‘국가대표팀’이다.

입찰단은 지난해 9월부터 현장답사, 설계를 동시에 진행하는 강행군을 통해 두 달 만인 지난해 11월 설계제안서를 마무리했다. 박태선 농어촌공사 태국 입찰준비단장은 “총 40만 부의 제안서를 인쇄해야 하는데 태국 인쇄소가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더라”며 “결국 우리 직원들이 작동법을 배워 3일 밤을 새우며 인쇄기를 돌려 서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10개 부문 사업별로 업체 3곳을 최종후보로 선정하는 ‘쇼트 리스트’ 발표가 2월 중으로 예정된 상황에서 한중일 입찰단의 물밑 경쟁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4대 강 사업이라는 대규모 물 관리 사업을 최근에 시행했다는 점 등으로 태국 정부 내에서 한국 측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만 장담할 수 없는 상황. 얼마 전엔 일본 정부가 태국에 1400억 엔(약 1조7000억 원) 규모의 차관을 약속했다는 소문이 돌아 한국 입찰단을 바짝 긴장시켰다.

한국에서 불거진 4대강 사업 부실 논란도 적지 않은 부담이다. 1월 말에 태국 정부 관계자들을 만난 박재순 농어촌공사 사장은 “태국 정부가 4대강 논란을 크게 문제 삼고 있지 않았지만 중국, 일본 등 경쟁국들이 이를 근거로 ‘네거티브 전략’을 펼 수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일본과 중국 반격 거세

한국은 지난해 해외건설 누적 수주액이 5000억 달러(약 550조 원)를 넘는 등 ‘제2의 해외건설 붐’을 맞았다. 하지만 중국, 일본이 수주경쟁에 공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경쟁구도가 재편되는 분위기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집권 이후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경제 부양책을 펴는 일본의 공세가 매섭다. 2011년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및 쓰나미의 피해를 복구하는 데 전념하던 일본 건설사들이 다시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 특히 일본 업체들은 정부와 대형 은행들을 통한 대규모 자금을 앞세워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선(先) 금융-후(後) 발주’ 사업을 선점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관계자는 “건설과 자금지원을 동시에 원하는 저개발국가의 대규모 공사에서 한국이 자금력을 앞세운 일본과 경쟁할 때 승률은 100전 100패”라고 설명했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2009년부터 세계건설 시장에서 선전해 온 중국 업체들 역시 최근 정부의 막대한 외환보유액 등을 발판으로 공격적 수주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 지사에 나가 있는 한 한국 건설사 관계자는 “그동안 중국 건설업체들은 기술력 부족으로 하청공사만 했지만 이제는 싱가포르의 땅을 직접 사들여 공사를 벌이는 등 ‘시행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민우 국토부 건설정책국장은 “이제 기술력만을 앞세워 해외 공사를 수주하기는 어렵다”며 “해외 사업을 먼저 발굴해 제안하고 대규모 금융 지원도 총괄하는 ‘통합 해외건설 지원 기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활성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방콕=김철중 기자 tnf@donga.com
#태국#몽키칙#물관리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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