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세계 일류]<4> 토종 중견 중소기업, 일회용 침 세계1위 ‘동방침구제작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4일 03시 00분


“中 한의사들도 우리가 만든 침 사용 시작”

경기 성남시 분당구 본사 사무실에서 침 제품을 들고 포즈를 취한 김근식 동방침구제작소 대표. 그는 “중소기업이 해외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성남=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경기 성남시 분당구 본사 사무실에서 침 제품을 들고 포즈를 취한 김근식 동방침구제작소 대표. 그는 “중소기업이 해외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품질을 높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성남=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1985년, 당시 29세의 한 청년은 닥치는 대로 한의사들을 만나 “현재 쓰시는 침(鍼)이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라고 물었다. ‘침 영업을 하는 친구인가’라며 경계하는 한의사들에게 그는 “시장조사 차원”이라며 끈덕지게 매달렸다. 그렇게 만난 한의사와 한의대 교수들이 줄잡아 100명이었다.

지인에게서 “앞으로 침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것 같다. 그러면 침 시장이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수요자들을 직접 만나 보기로 한 것이다. 3년 전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자재업체를 잠깐 운영하다 고배를 마신 경험이 있을 뿐 한의학 지식은 전혀 없었다. 그 청년이 동방침구제작소의 김근식 대표(57)다.

○ 바늘 하나에 울고 웃은 25년

김 대표가 1987년 세운 한방의료기기 제조업체 동방침구제작소는 지난해 국내와 중국의 공장 3곳에서 침 15억 개를 만들어 국내에 8억 개를 팔고 해외에 7억 개를 수출했다. 일회용 침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 1위(31%)로 지난해 지식경제부의 세계일류상품 기업으로 선정됐다. 국내 직원은 97명, 지난해 매출액은 250억 원 규모로 미국과 브라질, 영국에 판매법인을 두고 미주와 유럽, 아시아의 25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주력 제품인 일회용 침은 창업 아이템이었다. 1985년 한의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해준 조언은 “앞으로는 침을 재활용하지 않고 일회용 침이 대세가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대학에서도 일회용 침을 쓰지 않던 시절, 보수적인 한의사업계에서 일회용 멸균 침이 처음부터 호응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김 대표는 직접 한의원을 돌아다니며 ‘세계보건기구에서는 간염과 에이즈 예방을 위해 일회용 제품을 권장합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시장점유율은 서서히 높아졌다.

한의학계가 일회용 침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동안 김 대표는 조카 김철하 전무와 끊임없이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지름 0.25mm짜리 바늘 하나에 이런 저런 기술을 넣기 위해 울고 웃은 25년이었다.

왜 어떤 침은 아프고, 어떤 침은 안 아플까? 그게 한의사 개개인의 실력 차일까? 김 대표는 침 끝이 피부를 찌를 때뿐 아니라 몸 안에 들어간 침의 본체가 마찰을 일으키면서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줄이려면 침 끝의 각도를 유선형으로 만들어야 했고, 그러려면 손으로 연마하던 기존 공법에서 탈피해 자동 연마 장치를 개발해야 했다.

○ 침 제작기계도 스스로 개발

충남 보령시 웅천읍 동방침구제작소 공장에는 이 자동연마기기가 개발된 연대순으로 늘어서 있다. 작은 것이 과거에 개발된 것, 큰 것이 최근 개발된 것이다. 공업용 다이아몬드와 침이 접하는 각도에 따라 날카로운 침도, 상대적으로 뭉툭한 침도 만들 수 있다. 피를 뽑는 데 쓰는 침은 끝이 창날처럼 날카로워야 하고, 근육이 뭉친 곳을 찌르는 것은 상대적으로 납작해야 한다. 꽂은 다음 좌우로 돌리는 시술을 하기 위한 침은 너무 날카로우면 피부 아래서 부러질 수 있다.

용도뿐 아니라 침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도 침의 모양이 달라야 한다. 이 회사 곽동렬 부장은 “나라마다 시술자들의 손 크기도, 손을 쓰는 습관도 다르기 때문에 수출용 침은 이런 점까지 고려한다”고 말했다. 동방침구제작소는 침뿐 아니라 침을 만드는 기계도 90% 이상 자체 개발했다. 침을 감싸는 침병의 코일을 자동으로 만들어주는 장치, 침병과 침체(鍼體)를 자동으로 조립해주는 장치, 자동 포장장치 등이 그것이다. 요즘은 여러 공정을 통합해 자동화하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판매는 순조로웠지만 고비도 많았다. 김 대표는 “1998년 외환위기로 부도를 맞았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겨우 회생했는데 물품 대금을 떼이기도 했고, 믿었던 직원이 기계 설계를 들고 나가 자기 회사를 차렸을 때도 상처가 컸다”고 말했다.

2005년경부터는 일회용 주사기와 인슐린 주사기, 카테터(가는 관) 등 한방이 아닌 양방 의료소모품 시장에도 진출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300억 원. 김 대표는 “중국의 한의사들이 일회용 침을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앞으로 10년 동안은 중국시장이 계속 커질 것으로 본다”며 “그 뒤 10년은 어디에서 수익을 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남·보령=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일회용 침#동방침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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