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관리인-운송업체도 초긴장 미술품 운송업체 동부아트 직원들이 체코 화가 프란티셰크 폴틴의 ‘공장과 철교가 있는 풍경’을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미술관 전시실에 설치하고 있다.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은 프라하국립미술관의 미술품 보존 담당자 페테르 쿠탄 씨. 아래 사진은 덕수궁미술관 전시실에서 운송업체 직원들이 프라하국립미술관에서 배송된 작품들을 꺼내는 모습. 이 작품들은 한국에 도착한 후 기후 적응을 위해 이중포장 상태에서 30시간 동안 ‘휴식’을 취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지난달 19일 오후 2시 인천국제공항. 체코 프라하발(發) 비행기에서 빨간 나무상자 수십 개가 내려졌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온 외국인 한 명이 비밀스럽게 포장된 상자의 움직임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시했다. 상자들이 공항 앞에서 대기 중이던 무(無)진동 화물차에 실려 서울로 향하는 동안 이 외국인을 태운 승용차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오후 6시경 화물차가 도착한 곳은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미술관. 상자 안에는 지난달 25일부터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전’에 전시될 체코 화가 28명의 회화 작품 107점이 들어 있었다. 상자를 뒤따르던 외국인은 프라하국립미술관에서 파견된 쿠리어(courier·작품 안전관리원)였다.
○ 작품 손상 막기 위해 수술장갑 착용도
일반 화물 운송과 달리 미술작품을 옮기는 데에는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작전과 기술이 동원된다. 작품의 가격도 가격이지만 단 하나밖에 없는 인류의 진품 문화유산이 파손되거나 분실될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시회에서 작품을 담당하는 큐레이터는 포장에 앞서 작품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포장할 때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지 등을 운송회사에 꼼꼼히 알려준다. 미술품 특송 전문가인 김성국 코리아트서비스 대표는 “운송업체도 어떤 미술품을 어떤 재료로 포장할지에 대해 심혈을 기울여 공부한다”고 말했다.
회화 작품은 물감이 번지지 않도록 ‘그라신 지(紙)’라는 특수 종이로 포장해야 한다. 고미술품은 더 까다롭다. 작품 손상을 막기 위해 벌레가 싫어하는 중성지 또는 송포(중성지에 목화솜을 넣어 만듦)로 포장한다.
작품의 크기가 너무 크거나 포장의 ‘난도’가 높으면 운송팀이 애를 먹는다.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작품 ‘지옥의 문’은 높이 7m, 폭 4.2m의 나무상자에 넣어 옮겨야 했다. CJ대한통운 국제전시팀의 서영수 과장은 “상자의 폭이 너무 넓어 고속도로 이용을 포기하고 차가 거의 없는 새벽녘 국도로 간신히 운반했다”고 말했다.
특송팀이 가장 포장하기 어려워하는 작품은 ‘금관’이나 ‘금동 관모’다. 금관의 수많은 요철과 작은 장식들을 중성지로 일일이 포장해야 해 손이 많이 간다. 사람 손의 땀이 조금이라도 묻으면 금속이 부식될 수 있어 포장 때 수술용 장갑 착용은 필수다.
○ VIP급 대접 받는 작품들
이렇게 포장된 작품은 VIP급 대접을 받는다. 무진동 차량 탑승이 원칙이고 경호차량이 붙는 경우도 있다. 전종진 동부아트 이사는 “여러 작품을 배송할 때는 분실 등의 위험에 대비해 반드시 몇 차례로 나눠 운송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2009년 2월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됐던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은 비행기 여러 대에 나눠 타고 한국에 왔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오스트리아의 국보급 작품들을 한꺼번에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품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 적도를 통과하는 유화 작품은 반드시 항공기나 냉방시설을 갖춘 선박을 이용해 옮긴다. 그렇지 않으면 작품이 녹아내릴 수 있다. 먼 거리를 여행한 작품이 바로 전시장에 걸리는 것도 아니다. 기후 적응을 위해 최소 24시간 동안 온도 16∼24도, 습도 50∼60%로 맞춰진 수장고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프라하에서 온 작품들도 체코와 한국의 기후 차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이중포장을 해 30시간 동안 쉬도록 했다.
이서현·강홍구 기자 baltika7@donga.com 신사임 인턴기자 이화여대 철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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