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자동차가 해외 누적 판매 5000만 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대차가 1976년 한국 자동차 첫 고유 모델인 ‘포니’ 6대를 에콰도르에 수출하고, 기아차가 1975년 ‘브리사 픽업’ 10대를 카타르행 운반선에 선적한 지 38년 만에 이룬 쾌거다. 한국 자동차 산업이 변방에서 글로벌 자동차업계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며 국가 경제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 수출 효자산업으로 우뚝 선 자동차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말 현재 해외 누적 판매량이 4833만 대로 집계됐다고 20일 밝혔다.
두 회사의 월평균 해외 판매량이 50만∼60만 대에 달해 다음 달 5000만 대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5000만 대는 현대차 ‘아반떼’(길이 4530mm)를 한 줄로 세우면 지구를 5.7바퀴 돌 수 있다.
최근 10년간 현대·기아차의 해외 판매 실적은 급성장 추세다. 2001년 해외 누적 판매 1000만 대를 돌파한 이후 5년 만인 2006년 2000만 대를 달성했고 이후 가속도가 붙어 2009년 3000만 대, 2011년 4000만 대를 연이어 돌파했다.
현대·기아차의 해외 판매 기록 경신에는 여전히 국내 생산분의 해외 수출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지난해 말까지 현대·기아차 누적 수출대수는 3147만 대였다. 이는 작년 말 현재 현대·기아차의 전체 해외 누적 판매 4833만 대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규모다.
현대·기아차가 이끈 ‘메이드 인 코리아’ 자동차의 인기는 무역수지 개선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다. 지난해 한국의 수출 규모는 글로벌 경기둔화 탓에 1.3% 감소했지만 자동차부품은 6.5% 증가했고 완성차 역시 4.1% 늘었다. 자동차산업의 무역흑자는 617억 달러로 한국 전체 무역흑자(285억 달러)의 2배를 넘어서 기초체력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컸다. 지난해 자동차산업에 직간접으로 고용된 일자리 수는 175만 명으로 전년 대비 19%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국내 총 일자리 증가폭(10%)을 웃도는 수치다.
해외 현지에서의 생산·판매능력도 꾸준히 확대해 왔다. 현대·기아차는 1997년 현대차 터키 공장을 시작으로 선진국과 신흥국을 아우르는 글로벌 생산망의 구축에 나섰다. 이후 중국(144만 대) 미국(60만 대) 유럽(60만 대) 인도(60만 대) 러시아(20만 대)에 이어 지난해에는 연간 15만 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현대차 브라질 공장을 준공했다.
○ 정몽구 회장의 역발상 경영
현대·기아차의 해외 시장 개척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시장이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세계 2위의 자동차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한 해 1500만 대 안팎의 신차가 팔린다. 그만큼 전 세계 완성차업체들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에 진출하느냐 못 하느냐가 자동차회사의 명운을 가르기도 한다. 전 세계 120여 개 완성차업체 가운데 미국에 진출한 회사는 30여 개에 불과하다.
현대차는 1986년 소형차 ‘엑셀’로 미국 시장 문을 두드렸다. 당시 4995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을 내세운 엑셀은 미국 진출 첫해 16만8822대를 팔았다. 미국에 진출한 수입차 브랜드 가운데 진출 첫해 16만 대를 넘긴 모델은 엑셀이 유일하다.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는 ‘엑셀 신화’다.
하지만 엑셀 신화는 이후 현대차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현지 정비망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팔기만 했던 터라 얼마 안 돼 엑셀의 품질 문제가 불거졌다. 현대차라는 브랜드는 결국 미국 토크쇼 단골 소재로 인용됐다. CBS의 데이비드 레터맨은 “우주비행사를 놀라게 하려면 운전대에 현대 로고를 박아둬라”라고 조롱했고, NBC의 제이 레노는 “두 개의 파이프가 연결된 현대차를 우리는 손수레라고 부른다”며 독설을 퍼부었다.
결국 1998년 미국 판매가 9만 대로 최악을 기록하자 정몽구 회장은 ‘10년 10만 마일’이라는 보증프로그램을 선언했다. 경쟁사들은 엄청난 비용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무한책임을 지겠다는 정 회장의 ‘역발상’ 경영은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듬해 미국 판매대수는 16만 대로 82% 신장했고 2000년 24만4391대, 2001년 34만6235대를 기록했다.
또 2009년 금융위기가 몰아닥친 미국 시장에서 현대차를 구입한 후 1년 이내에 실직이나 건강악화로 더이상 차를 운행할 수 없을 때 반납하도록 한 ‘어슈런스 프로그램’ 역시 정 회장식 역발상이었다.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시간 내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거둔 성과는 전 세계 시장에서 현대·기아차 브랜드를 한 단계 격상시키고 해외 판매에 가속도를 붙이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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