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카페]공공기관 여성임원 후보 턱없이 부족… 역차별 논란도 시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2일 03시 00분


‘30% 임명’ 못박기전 불평등 해소 먼저

강유현 산업부기자
강유현 산업부기자
공공기관에 다니는 여성 간부 A 씨는 50대 초반인데 아직 미혼이다. 독신주의자는 아니었다. 직장과 가정생활을 병행할 자신이 없었다. 출산한 뒤 줄줄이 퇴사하는 동료들을 보니 결혼은 못할 짓이었다. 회사 생활도 쉽지 않았다. 설익은 아이디어를 낼 때면 ‘그럼 그렇지’라는 눈빛이 느껴졌다. 회식에 잘 불러주지도 않았다. 오기가 나 ‘회식은 100% 참석, 파장할 때까지 지키기’라는 원칙을 지켰다. 그는 “지금도 여성들에겐 여전히 보이지 않는 차별이 많다”고 말했다.

40대인 중소기업 여사장 B 씨는 “사장 오라고 해”라는 말이 가장 듣기 싫었다고 했다. 사장이 젊은 여자라니 “대금 받으려면 사장이 직접 받아 가라”고 버티는 거래처가 많았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상한 B 씨는 일부 거래처와는 계약을 끊어버리기도 했다.

A, B 씨처럼 일선 현장에서는 아직도 승진이나 경력관리, 영업 등에서 차별을 받는다고 느끼는 여성이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에는 공공기관 여성 임원을 5년 내 30%까지 늘리라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는 21일 공공기관 여성 임원 후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짚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30%’라는 기준을 들이댈 때 일어날 수 있는 갖가지 문제점도 전했다. 기자는 이 기사를 작성하면서 ‘현실성이 없으니 법안에 반대한다’는 것으로 비치지 않을까 적잖이 신경을 썼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가사(家事)에만 매달리기 십상인 여성 노동력을 끄집어내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17년 전인 1996년 정부는 채용 단계에서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공공기관 여성채용목표제를 도입했다. 3년 뒤에는 군가산점을 폐지해 여성 입사가 급격히 늘었다. 당시에도 문제점은 있었고, 지금과 비슷한 진통도 겪었다. 역차별 논란이 일자 2003년에는 어느 성별이든 입사자의 70%를 넘지 않도록 하는 양성평등채용목표제가 도입됐다.

여성 임원 비율 확대도 마찬가지다. ‘맞지도 않는 옷’(30% 목표)에 억지로 몸을 맞추라는 식이어서는 곤란하지만 여성의 성장을 돕기 위한 제도적 뒷받침은 여전히 필요하다.

취재하는 동안 양성 평등이라는 말을 여성에 대한 ‘특혜’로 해석하거나, 여성 임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편승해 무임승차를 바라는 시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자 선배들을 보며 실력과 전문성을 갖춘 여성이 성공하기 위한 ‘거름’을 주는 것은 분명히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유현 산업부기자 yhkang@donga.com
#공공기관#여성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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