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 기업]불경기를 뚫는 유비무환 한국기업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7일 03시 00분


R&D+인재경영, 미래 개척 위한 투자는 계속된다

요즘같은 경기 침체기에도 기업들은 연구개발(R&D) 투자와 우수한 인재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어려울 때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현재 생존은 물론 미래에 활짝 날개를 펼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동아일보DB
요즘같은 경기 침체기에도 기업들은 연구개발(R&D) 투자와 우수한 인재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어려울 때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현재 생존은 물론 미래에 활짝 날개를 펼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동아일보DB
《 미국의 벨연구소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초대 장관 후보자가 수장(首長)을 맡았던 세계 최고수준의 민간 연구개발(R&D) 기관이다. 대공황의 그늘이 아직 짙던 1930년대 중반, 미국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인력을 줄이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벨연구소는 달랐다.

여타 연구소 급료의 두 배에 이르는 파격적인 대우를 하며 과학자들을 끌어 모았다. ‘세상에 없는 것’에 미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 덕에 벨연구소는 3만3000여 개의 특허와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세계의 산업과 과학계를 이끌 수 있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요즘같이 경영환경이 어려운 때일수록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눈이 필요하다. 우리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끝 모를 불황 속에서도 R&D와 우수 인재 확보에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는 이유다. 》
불황기 생존전략? 투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12월 발간한 보고서 등에 따르면 경기 침체기 기업의 대표적인 생존전략은 R&D에 대한 투자와 우수 인재 확보였다. 전경련은 침체기일수록 R&D에 투자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현대기아자동차와 삼성전자를 꼽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GM, 도요타, 혼다 등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은 R&D 투자규모를 일제히 줄였지만 현대기아차는 꾸준히 늘렸다. 그 결과 현대기아차는 2007∼2011년 사이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린 유일한 자동차 기업이 됐다.

이 같은 흐름은 반도체 시장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2008년 이후 인텔, 도시바, 텍사스인스트루먼트는 기존 R&D 투자규모를 회복하지 못했지만 삼성전자는 되레 R&D 투자액을 대폭 늘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였다.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등 글로벌 인터넷 기업들은 인재 확보에 열중해 성공한 사례다. 인재 영입을 위해서라면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는 전략도 마다하지 않은 ‘통 큰’ 기업들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0, 2011년 구글이 벌인 105건의 인수합병(M&A) 중 대부분은 인재 확보가 목적이었다. 페이스북도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스마트폰 메시지업체와 위치정보업체들을 인수해 빠른 성장의 원동력을 확보했다.

국가경제 책임지는 기업 R&D

기업 R&D 투자는 고용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R&D 투자액은 지난 10년간 2.9배 늘어났고 그 결과 2003년부터 지난해까지 임금 근로자 수도 21% 증가했다. 특히 R&D 인력은 113% 증가했다.

전경련과 하준경 한양대 교수 연구팀 등에 따르면 기업들의 R&D 투자가 1조 원 줄어들면 일자리는 1만6000개 감소한다. 2010년 기준으로 32조 원 규모인 국내 기업들의 R&D 투자는 관련 인력 26만4000명을 포함해 50만 명이 넘는 고용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다. 하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해외에서도 이스라엘, 일본, 독일 등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 R&D 투자가 많은 국가는 실업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업 R&D 투자가 기업 자체의 경쟁력 향상을 넘어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그에 따른 소비자 구매력 향상 등 경제 전반에 파급 효과를 일으킨다”고 설명했다.

기업들 “올해도 투자 늘린다”



새로 들어선 박근혜 정부의 정책 방향과 글로벌 경기 전망은 불투명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줄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스타트를 끊은 곳은 LG그룹이다. LG그룹은 투자를 줄일 것이라는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올해 투자규모를 지난해보다 상당 폭 늘린 20조 원으로 정해 발표했다. 그룹 창립 이래 사상 최대 규모다. LG그룹 측은 “경기전망이 불투명하지만 시장을 선도하고 국민경제에 대한 기업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투자를 늘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투자규모가 늘어나면서 채용 인원도 지난해보다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 관계자는 “계열사별 채용규모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수준(1만5000명) 이상을 채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 역시 올해 투자금액을 지난해(15조1000억 원)보다 10% 늘어난 16조6000억 원으로 잡았다. 김창근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그동안 어려울 때일수록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과감하게 해왔기 때문에 우리의 오늘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려울 때 위축되면 움츠러들 뿐 아니라 (전진하는 기업 대열에서) 탈락할 수 있다”고 투자 배경을 설명했다.

CJ그룹도 올해 역대 최대인 3조2000억 원을 투자하고 7200명을 신규 채용하기로 했다. 이 그룹의 전체 투자가 3조 원을 넘긴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2011년 1조6900억 원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로 늘어난 규모다. CJ그룹 측은 “경기 불확실성이 걷히지 않고 있지만 지속적인 투자로 신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라며 시설 및 R&D 투자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도 아직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수준의 투자와 고용은 유지할 방침으로 알려져 전반적으로 주요 기업의 투자 실적은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설투자는 수요가 없으면 굳이 늘리지 않더라도 우수 인재 확보의 비결인 R&D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계획”이라며 “어려울 때 인재를 확보해야 경기가 살아났을 때 다시 기지개를 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 연구·휴식·취미활동… 원스톱 연구센터, 젊은인재 유혹 ▼


명품 산책길과 조각공원, 개인 트레이너가 상주하는 최고급 헬스센터…. 고가(高價) 아파트 광고가 아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완공했거나 완공할 예정인 주요 연구개발(R&D) 센터의 내부 모습이다. 기업들이 핵심 R&D센터를 수도권에 집중 배치하고 호텔 부럽지 않은 내부 시설을 앞세워 젊은 인재들을 ‘유혹’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서울 서초구 우면동과 경기 수원, 화성, 평택시 등 수도권에 대규모 R&D센터를 잇달아 세우고 있다. 2015년 5월 완공 예정인 서울 우면동 R&D센터는 연면적 33만 m²에 지상 10층, 지하 5층 건물 6개 동으로, 디자인 및 소프트웨어(SW) 인력 1만여 명이 일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이를 자유롭고 창의적인 분위기에 친환경 콘셉트를 적용한 첨단 연구소로 만들 계획이다. 자연친화적인 명품 산책길과 조각공원 등을 조성해 연구원들이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다.

지상 25층, 지하 5층 규모로 LG그룹의 가장 큰 연구시설인 LG전자 ‘서초 R&D캠퍼스’ 역시 인재 확보를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캠퍼스 내에는 피트니스 시설과 탁구장, 요가실, 수면실, 심리상담실 등이 있어 일과 삶의 조화를 추구할 수 있다. 특히 피트니스 시설은 밤샘 근무를 밥 먹듯 하는 연구인력을 배려해 24시간 개방되며 오후 6∼9시까지는 트레이너도 상주한다. 이 밖에 디자이너들이 머리를 식히는 휴식공간과 각종 디자인 관련 서적이 마련된 도서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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