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경영 컨설턴트가 업무 협의를 위해 아침 일찍 대기업 임원을 찾아갔다. 그 임원은 인상을 찌푸리고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직원들의 명함 제작, 근태 관리, 휴가원 결재와 같은 사소한 일들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그는 “한 달에 15∼20시간은 이런 일들에 쓴다”고 말했다.
억대 연봉을 받는 기업 임원들이 몇만 원짜리 명함 제작을 승인해 주려고 시간을 쓰는 것이 과연 효율적일까? 고급 인재들이 매일 반복되는 행정사무에 잡혀서 정작 핵심 업무에는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지 못하거나 과로로 고통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도 마찬가지다.
경영컨설팅 회사 매킨지는 최근 글로벌 대기업 임원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시간 관리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업무시간을 아주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는 대답은 9%에 불과했다. 절반가량은 현재 자신의 업무 우선순위가 잘못됐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큰 자본이 들어가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꼼꼼하게 수익성과 자본 조달 방법을 따져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경영진의 시간이 얼마나 투자되는지는 잘 고려하지 않는다. 임원이라면 일이 많다고 불평하지 말고 주말을 희생하거나 잠을 줄여서라도 주어진 일은 모두 마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쥐어짜면 계속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이는 업무의 과부하로 이어져 신사업이 실패로 끝날 확률을 높인다. 그뿐만 아니라 조직이 원래 잘하고 있던 사업을 계속할 에너지마저 잃게 만든다.
시간은 돈과 같이 한정된 자원이다. 따라서 시간 관리는 개인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조직 차원에서의 ‘시간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임직원들이 매일 혹은 매주 단위로 각 업무에 쓰는 시간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시간 예산’을 짜도록 해야 한다.
둘째, 회의에 낭비되는 시간을 막아야 한다. 효율성이 좋은 조직들은 단순한 보고나 정보 교류성 회의에는 10% 미만의 시간만 할애하고 실질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회의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셋째, 최고경영자(CEO)와 같은 최고위급 임원들은 최소한 분기당 한 번은 잡무에서 벗어나 큰 그림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는 2, 3일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비서와 같은 조직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푼돈을 아끼려다 큰돈을 허투루 쓰는 실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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