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식품 수출팀의 하인호 부장(51)은 1994년부터 우유 대신 넣는 커피크리머(creamer)인 ‘프리마(Prima)’를 들고 세계를 누볐다. 백색가루인 프리마 시제품을 들고 가다 공항에서 ‘적발’돼 곤욕을 치른 적도 많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국내에서는 커피믹스가 대중화되며 커피에 타먹는 프리마가 ‘한물 간 상품’이 돼 수출밖에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서식품은 현재 미국 호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등 27개국에 프리마를 수출하고 있다. 수출 첫해였던 1994년 110만 달러(약 11억9000만 원)였던 수출액은 지난해 5502만 달러(약 595억8000만 원)로 껑충 뛰었다. 러시아에서는 41개 유통업체에 입점했고, 타지키스탄에서는 시장점유율이 77%를 넘었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에서는 프리마가 시리얼 수프 아이스크림 빵 등 각종 요리에 맛을 살리는 필수 조미료로 자리 잡았다.
○ 한국식 판촉전략 통했다
프리마의 가장 큰 시장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이다. 동서식품은 이 지역에서 경품 증정행사를 비롯해 전단, 도우미를 동반한 시음회, 래핑(wrapping) 버스 등 각종 판촉수단을 총동원했다. 모두 한국에서 시도했던 방법이다.
허강 수출팀장(40)은 “이 지역에서는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닫혀 있던 소비자의 마음을 여는 게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경품행사를 해도 거짓말이라고 여기는 소비자에게 믿음을 줘야 했다. 수출팀은 당첨자 명단을 TV 뉴스를 통해 방영하는 ‘파격’을 감행했다. 프리마의 경품행사만은 진짜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시음행사를 열어도 시식용 제품을 맛보려 하지 않던 소비자들이 그제야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2010년 카자흐스탄에서 처음 열었던 경품행사의 응모자는 1692명에 그쳤지만 2011년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행사에는 3만5770명이 참가했다. 네슬레를 비롯한 경쟁사들이 판촉활동에 미온적인 틈을 타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인 덕분이었다.
이밖에도 동서식품은 현지 최초로 도우미 판촉사원을 고용하고, 11g짜리 시음용 스틱제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지역 대형마트에 프리마 전용 판매대도 설치했다. 경품행사를 통해 확보한 고객 정보를 활용해 신제품 출시 소식을 문자메시지로 발송했다. 이 지역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마케팅이었다.
허 팀장은 “카자흐스탄 알마티의 재래시장에 갔더니 한 할머니가 1kg짜리 프리마 10개를 싸들고 가더라”며 “이제 프리마라는 브랜드만 믿고 구매하는 충성고객이 늘었다”고 말했다.
○ 동남아시장 전략적 공략
중앙아시아에서는 프리마의 타깃이 개별 소비자라면, 동남아시아에서는 제조업체에 공급하는 벌크(bulk) 단위 거래가 주를 이룬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서는 커피 제조업체에, 대만에서는 버블티 업체에 프리마를 공급하는 식이다. 동서식품은 제과 반죽용에 들어가는 크리머 시장을 겨냥해 ‘하이 밀키’라는 하위 브랜드도 만들었다.
동남아시아 시장을 공략할 때는 현지 입맛에 맞게 ‘튜닝(조율)’하는 현지화 전략에 특히 신경을 썼다. 단백질과 기름의 배합비율을 업체마다 달리하고 여기에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향을 첨가했다. 이를 위해 동서식품 수출팀은 연구개발(R&D)부터 현지 업체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맞춤형 크리머가 나오기까지는 대략 3∼4년이 걸린다.
하 부장은 “동남아시아 시장을 위해서만 프리마 20가지 버전을 만들었다”며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떤 향을 좋아하는지 알아내 기존 제품에 적용하는 것이 가장 힘든 작업”이라고 말했다. 동서식품 수출팀은 올해 7000만 달러, 2015년까지 1억 달러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는 아직 진출하지 못한 태국 미얀마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을 뚫고 미국과 남미시장에 보다 적극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아프리카 대륙도 수출팀이 수년 내에 꼭 진출해보고 싶은 곳이다.
하 부장은 “일부 빈곤 국가에서는 프리마를 식사 대용으로 쓰기도 한다”며 “국내 자선단체를 통해 기아로 신음하는 아프리카 대륙에 프리마를 무상 보급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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