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새 성장동력이 필요할 할 때마다 기술과 시장의 발전을 예측해 국가전략을 세우고 연구개발(R&D) 투자를 주도해 왔다. 노무현 정부의 ‘10대 신성장동력’이나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같은 정책 브랜드가 그래서 나왔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일자리가 많이 나왔다는 성공담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가 10년 전 신성장동력으로 꼽고 투자도 많이 한 지능형 로봇산업을 보자. 지금 로봇 덕분에 일자리를 얻었다는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되나.
#장면 2.
산업 디자이너인 안모 씨는 10년 전쯤 하수구에 걸린 머리카락 청소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았다. 꽤 유명해졌지만 정작 개발자는 돈을 벌지 못했다. 수많은 복제품이 판치는 바람에 그의 창조는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사장(死藏)되고 말았다.
새 정부의 화두인 창조경제를 어떻게 풀어낼지에 대해 기자와 인터뷰한 여러 전문가들은 ‘절대로 정부가 창조경제를 예측하고 주도하려 들지 말라’고 조언했다. 정부가 R&D 과제의 경중(輕重)을 판단해 예산을 배분하는 일을 되풀이한다면 창조경제는 5년 뒤 헛된 구호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창조경제에서는 ‘정부와 손발을 잘 맞춰 예산을 따오는 연구자’나 ‘성과 잘 내는 대기업’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창조는 예산을 따내기 위한 제안서를 쓸 때나 정책 성과를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보고서를 만들 때 주로 발휘될 뿐이다.
대신 개인이나 중소기업 등 누구나 좋은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으면 쉽게 성공할 수 있도록 특허를 보호하고 기술거래나 벤처기업 인수합병(M&A)을 활성화하는 데 정부가 힘을 쏟아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창조의 가치를 보호하고 키워내는 창조경제의 성공 기반 만들기에 매진하라는 얘기다.
‘누구누구가 공무원이 되고, 좋은 대학의 박사나 연구원이 되고, 대기업 직원이 됐다더라’는 얘기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창조경제가 싹 트기를 기대하긴 어렵다. ‘누구누구는 좋은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인생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가 넘쳐나고 이에 자극을 받아 많은 사람이 도전에 나서는, 그런 세상이 창조경제가 꿈꾸는 세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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