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경영난에 빠진 일본 전자업체 샤프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삼성전자는 6일 샤프에 104억 엔(약 1200억 원)을 출자하고 지분 3.0%를 넘겨받는 투자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샤프의 5대 주주로 올라섰다. 금융회사를 제외하면 주주 가운데 지분이 가장 많다.
경영 악화로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던 샤프는 삼성전자로부터 긴급자금을 받아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샤프는 창사 이래 전통으로 지켜왔던 종신 고용 문화를 버리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적자 폭은 줄지 않았다. 작년 3월 대만 최대 전자그룹인 훙하이(鴻海)정밀공업에 지분 9.9%를 669억 엔(약 7770억 원)에 매각하기로 했지만 최근 세부적인 조건 등을 놓고 벌이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자기자본비율(총자산 중 자기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9.9%까지 떨어진 샤프가 삼성전자에 긴급 ‘SOS’를 보내 자본 확충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주로 TV 생산에 쓰이는 액정표시장치(LCD) 패널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샤프와 지분 투자계약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대부분의 디스플레이 패널을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공급받고 있지만 60인치 이상 대형 LCD의 상당 부분을 샤프에서 조달해 왔다. 특히 최근 60인치 이상 대형 TV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10세대 LCD 생산라인을 갖고 있는 샤프의 경쟁력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10세대 라인을 새로 만들려면 10조 원 이상이 들어가는데 삼성전자로서는 훨씬 적은 비용으로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했으니 나쁘지 않은 거래”라고 말했다.
애플 역시 샤프로부터 디스플레이 패널을 공급받아 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제휴는 덤으로 ‘애플 견제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전자가 삼성디스플레이에 이어 샤프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 공급업체 간 경쟁을 통해 단가를 낮춰 왔던 애플의 구매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삼성전자는 샤프의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을 방침이다. 삼성전자 측은 “이번 지분 투자는 최근 퀄컴 등으로부터 자본 확충을 추진해 온 샤프의 핵심 사업인 액정사업의 수익 개선에 기여하고 향후 샤프와 확고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본 언론들도 삼성전자의 이번 투자에 큰 관심을 보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제휴는 TV와 반도체에서 격심하게 경쟁해 온 두 나라 가전 대기업이 라이벌 관계를 넘어서는 조치로 (업계) 재편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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