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 씨(39)는 2011년 경기 파주시 야당동 타운하우스에 입주했다. 김 씨는 전원주택이란 고급스럽고 비싸 ‘그림의 떡’이라고 생각하며 아파트만 찾았지만 우연히 2억 원대의 전원주택이 있다는 걸 알고는 반하고 말았다.
남편도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한다”며 선뜻 동의해 아파트를 벗어난 지 2년. 경의선 운정역까지 걸어서 20분이나 걸려 생활은 좀 불편하지만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인 세 아이는 이사 갈까 봐 겁낼 정도로 집을 좋아하게 됐다. “층간소음 걱정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으니 아이들은 대만족이죠. 눈이라도 내리면 동네 아이들이 다 밖으로 뛰어나와 눈사람을 만들어요.”
전원주택 시장에도 ‘투자 2기’ 시대가 왔다. 2000년대 초에는 마당이 딸린 대저택 같은 전원주택이 대세였다면 이젠 거품을 뺀 ‘실속형’이 인기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과거와 달리 은퇴 후 세대가 아닌 30, 40대가 전원주택에 몰린 덕분이다. 바야흐로 ‘전원주택 2.0’ 시대다.
○ ‘실속 바람’ 타고 중소형이 대세
7일 찾은 야당동 도시농부 타운하우스는 ‘실속형 전원주택’으로 인기를 모은 대표적인 곳이다. 1단지가 1층은 전용면적 56m²에 마당 26m²를 더해 1억8000만 원, 2층은 다락방을 포함해 전용면적 73m²에 테라스 14m²를 합해 2억3000만 원으로 비교적 싼값에 분양돼 2010년 빠르게 팔려나가며 입소문을 탔다. 한번 바람을 타자 더 큰 면적의 2, 3단지도 성공적으로 분양됐고, 최근 4단지를 분양 중이다.
박동영 도시농부 기획실장은 “기존 전원주택은 싸다 해도 6억 원 정도여서 선뜻 접근하기가 어려웠다”며 “가격대를 확 낮춰 부담을 줄이자 아파트에서 벗어나려는 인파가 몰렸다”고 설명했다. 도시농부는 파주의 성공을 발판 삼아 동탄, 용인에서도 중소형 타운하우스를 공급하고 있다.
수도권 전원주택촌으로 유명한 경기 양평군에도 최근 중소형 바람이 불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조경이 잘된 마당 넓은 집이 인기였지만 이제는 방 2, 3개인 소형주택 거래가 활발하다.
▼ “전원주택도 거품 빼서 가격 낮추자” 방 2, 3개짜리 아담한 주택거래 활발 ▼
마당까지 포함해도 대지면적이 330m²를 넘지 않아 2억∼3억 원 선에 매입이 가능하다. 유대근 양평 명품공인중개사 대표는 “대형은 매매가 뜸하지만 1억 원대 토지, 자그마한 2억 원대 전원주택은 활발하게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30, 40대 젊은 부부는 혁신초등학교를 갖춘 용문면, 서종면에 관심이 높다”고 전했다.
업체들도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땅콩집건축은 경기 양평 숲속마을에서 ‘외콩집’ 단지 2차를 분양 중이다. 외콩집은 한 필지에 닮은꼴의 집 두 채를 붙여 지은 땅콩집과 달리 집이 한 채만 있어 수도권에서 아파트 전세금 정도면 충분히 장만할 수 있다. 실제 이곳의 분양가는 1억5000만∼2억5000만 원. 대용E&C가 경기 용인시 처인구 호동에서 분양 중인 ‘라움 빌리지’도 3억 원대의 전원주택을 선보이고 있다.
○ 3040세대 젊은 부부가 주요 고객
부동산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5억∼6억 원대의 대형 전원주택을 소비할 만한 여력이 있는 소비층이 많이 사라졌다. 또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온 건 3040세대다. 이미 집을 소유하고 있는 은퇴자보다는 30, 40대가 전원주택의 실제 수요자가 됐다. 이들은 경제력이 약한 데다 자녀가 어리다 보니 중소형을 선호한다.
실제로 파주 도시농부 타운하우스 입주자도 대부분이 30, 40대였다. 초등학교 1, 5학년 자녀를 둔 박모 씨(40)는 “단지 내에서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주민들이 영어·중국어 수업을 하는 등 ‘재능기부’를 통해 교육에 나서고 있어 교육환경이 좋다”며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살아 보니 아이들 교육에 별다른 문제가 없어 만족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아파트 전세금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실속형 전원주택 매매로 실수요자의 관심이 돌아서기도 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2월부터 2012년 11월 말까지 5년 동안 아파트 전세금은 37.17% 올랐다. ‘오르고 또 오르는’ 서울시내 아파트 전세금 상승에 지친 이들이 전세금으로도 충분히 내 집 마련이 가능한 교외 전원주택으로 눈을 돌리게 된 셈이다.
또 업체들이 단순히 집을 지어 분양만 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을 위해 셔틀버스를 운영하고 커뮤니티센터를 만들어 각종 강좌를 여는 점도 인기 요인이다. 아파트보다 상대적으로 덜한 생활의 편의를 보완해주고 있는 것.
김신조 내외주건 사장은 “경기가 어려워지고, 부유층을 타깃으로 해 전원주택을 공급하는 데 한계가 있다 보니 업체들이 크기와 가격대를 줄이고 있고 수요층도 그에 반응해 늘고 있다”며 “불경기 여파로 당분간은 전원주택 시장에서의 ‘중소형 바람’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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