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외국계 증권사의 대표로, 늦은 밤 사무실에 홀로 남아 작성하던 자료를 마지막으로 정리하던 참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려는 순간 먼저 퇴근한 직원으로부터 도저히 믿기 힘든 전화가 걸려왔다. 뉴욕 쌍둥이 빌딩이 불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대한 민간 여객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의 한가운데에 박히며 폭발하는 장면을 전 세계인이 지켜봤다. 당시의 ‘충격과 공포’는 미국 국민이 아니어도 모두 생생할 것이다.
2004년에 나온 ‘모든 적들에 맞서’는 바로 이 9·11테러와 관련한 논픽션이다. 저자는 정치군사 분석가이자 30여 년 경력의 국가안보 관련 베테랑 공무원이었다. 9·11 당시 대테러 그룹의 최고책임자로서 사태 대응과 수습 업무를 지휘했다.
저자는 혼란한 와중에도 냉철함을 유지하며 사고와 테러를 구분해야 했다. 그는 또 사건 이후 사실을 기록해 가는 과정에서도 냉철함을 유지했다.
9·11 발생 직후 사실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뒤 이 책은 냉전시대에 미국이 중동 문제에 깊이 개입하게 된 배경, 알카에다가 미국을 적으로 삼게 된 이유, 저자가 보좌했던 세 대통령의 중동 정책에 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왜 이라크를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했는지를 서술하며, 당시 대규모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대량살상무기(WMD)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는 점을 상세히 짚어내고 있다.
‘모든 적들에 맞서’는 출간 당시 미국 부시 정부의 대테러 및 외교 대책을 강도 높게 비판한 책으로 주목받으며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최근의 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자칫 편향된 시각으로 왜곡된 진실을 전달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10년이나 국정을 보좌한 덕분에 자신이 접근할 수 있었던 내밀한 정보를 바탕으로 미국이라는 거대 국가의 명백히 큰 잘못을 고발했다.
9·11, 이라크 평정, 미국의 대테러 정책과 미국에 의한 세계 역학구도 등에 대한 내막과 진실을 돌아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생생하고도 진지한 기록물이자 문학적 가치가 높은 논픽션으로 큰 도움이 될 필독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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