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을 찾으니 진로가 보였어요” 한국전력에서 5개월간의 인턴을 마친 뒤 정규직이 된 실업계 고졸사원 이승아 씨(왼쪽)와 김지영 씨가 나란히 앉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한국전력 제공
“그래 봤자 카센터밖에 더 가겠어?”
약 3년 전 김지영 씨(19)가 자동차 특성화고인 신진자동차고에 진학하겠다고 하자 부모님을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그를 만류했다. 어려서부터 자동차 튜닝(개조) 전문가를 꿈꿔온 그는 주변의 시선보다 꿈을 택했다.
그러나 막상 고등학교에 입학해 대부분의 선배가 정말 카센터에 취직하는 것을 보고 장벽에 부닥친 기분이었다. 김 씨는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더욱 공부에 매달렸다. 결국 1학년 말 적성을 발견했다. 전기회로였다.
이승아 씨(19·여)의 방황은 중학교 2학년 때 시작됐다. 아버지가 공장장으로 일하던 회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졸지에 실업자 신세가 된 것이다. 이 씨는 아버지를 피해 밖으로 나돌았다. 공부에 대한 흥미도 잃었다. 결국 전체 300명 중 약 250등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인문계를 가서 뭐하나’란 생각에 실업계고인 부산여상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흥미를 발견했다. 실업계고의 필수과정인 회계였다.
이들은 지난해 한국전력이 도입한 ‘채용확정형 인턴 2기’로 입사한 실업계 고졸사원이다. 채용확정형 인턴은 5∼12개월간 비정규직을 거친 뒤 성적에 따라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제도다. 고졸 채용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2011년 한국남동발전을 시작으로 일부 공기업이 이 제도를 도입했다. 김 씨와 이 씨는 지난해 9월부터 5개월간 인턴을 마친 뒤 동기 102명과 함께 지난달 정규직이 됐다.
○“전선 없는 송전망 개발할래요”
김 씨는 “꿈을 좇아가니 길이 보였다”고 했다. 1학년 말 전기에 관심이 생기자 그는 선후배들을 모아 ‘과회의반’이라는 전기회로 연구모임을 만들었다. 거의 매일 20여 명이 모여 자정까지 회로도를 그리고 전선을 연결해 디스플레이와 로봇, 전력선 통신 등을 시험해보는 작업을 진행했다. 목표 기업으로는 한전과 삼성전자를 정했다. 국내 최대 전기기업, 국내 최대 전자기업이라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한전 서울지역본부 판매사업실과 송변전사업실에서 일한 김 씨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전선이 없어도 전기를 송·배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는 “공해도 없고 도시 미관에도 좋은 신기술이 될 것”이라며 “전기를 한 번 보내면 일정 시간 전기 없이도 제품이 작동할 수 있는 무동력 시스템을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전 여성 임원 되고파”
이 씨는 아버지의 실직이 도리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됐다. 성적이 떨어져 실업계고에 갔지만 성적이 전교 상위 6∼7%로 오르자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특히 수학과 회계 과목에서는 내신 1등급을 꾸준히 유지했다.
“실업계고에 입학해서 필수 코스인 회계를 공부하다 보니 점점 남들은 싫다는 대차대조표, 조직운영론 등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잘하는 것을 찾다 보니 진로도 명확해진 셈입니다.”
한전에서 인턴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희망대로 부산지역본부 요금관리팀에 배치받았다. 그는 최근 ‘이제 정직원이니 혼자서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선배의 충고를 듣고 책상 앞에 ‘정확’이라는 단어를 붙여놓은 뒤 계산한 수치가 맞는지 다섯 번씩 확인하곤 한다.
그의 목표는 한전의 여성 임원이 되는 것이다. “고위직에 여성 인력이 생각보다 적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회계와 경영 분야에서 더욱 전문성을 키워 여성 임원이 되고 싶습니다.”
○“대학은 인생의 선택사항”
이들의 인생에 대학은 필수가 아니었다. 남들 다 가는 대학이니 가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일을 잘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려는 꿈이 생겼다. 김 씨는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이 씨는 부산대 경영학과가 목표다. 김 씨는 “흔히 ‘SKY’라고 하잖아요. 기왕이면 목표를 높게 잡아야죠”라며 활짝 웃었다.
둘은 “대학에 진학하고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친구가 주변에 많다”며 또래에게 ‘선취업 후취학’의 장점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이 씨는 “대학은 언제 가더라도 똑같은 걸 배우겠지만 어린 나이에 사회에 나오면 더 많은 경험을 일찍 쌓으며 성장할 수 있다”며 “나중에 다섯 살 많은 후배가 들어오면 나는 5년을 버는 셈”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