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PC 들고 ‘출장영업’ 준비
이제 증권 영업도 ‘방문판매’ 시대. 올해부터 태블릿PC로 현장에서 증권계좌 개설이 가능해지자 1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신한금융투자타워에서 영업부 직원들이 태블릿PC로 계좌를 개설하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예 고객님. 제가 갈게요. 집 앞 커피숍에서 만나요.”
4일 신한금융투자 삼성역지점에 근무하는 신승은 차장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아파트단지로 ‘출장’을 나섰다. 고객이 증권계좌를 새로 만들고 싶다며 연락을 해온 것이다. 신 차장은 책상에서 일어서며 서류 대신 아이패드를 집어들었다.
과거에도 ‘출장영업’이 없었던 건 아니다. 증권사 직원이 필요한 서류를 들고 가면 고객이 신청서를 작성하고 신분증 사본을 건네줘 이를 다시 지점에 돌아와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신 차장은 “올해부터는 태블릿PC가 지급되면서 현장에서 계좌 개설을 마칠 수 있게 돼 직장인과 아기를 돌보는 가정주부 고객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화장품, 정수기, 보험업계에서 주로 사용하던 ‘방판(방문판매)’ 마케팅이 증권업계로 확산되고 있다. 올해부터 태블릿PC를 활용한 방문 계좌 개설이 가능해지며 증권사 직원들의 ‘발품팔이’가 본격화하고 있다.
○ 심각해지는 영업 부진, 영업방식부터 “바꿔”
증권사의 방판 마케팅이 본격화한 건 올해 1월부터다. 금융투자협회에서 마련한 ‘금융투자상품 계좌 개설 및 매매를 위한 전자문서 관리’ 기준이 올해부터 시행된 덕분이다.
증권업계는 지난해 6월부터 금투협과 태스크포스(TF)를 꾸려 태블릿PC를 이용한 방판을 준비해 왔다. 우리투자증권 NH농협증권 신한금융투자 KB금융투자증권 등이 참여해 상품 판매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금융투자업계에 방판 마케팅이 도입된 것은 갈수록 심해지는 영업 부진이 배경이 됐다. 주식거래 자체가 줄어들면서 지점을 방문하는 고객이 급감하자 영업직원이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직접 고객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일부 증권사 지점은 신규 고객이 하루 10명도 안 돼 영업난에 시달린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종구 NH농협증권 신규사업팀 차장은 “지점 임차료로 지출되는 비용은 큰데 수익은 없으니 오프라인 지점 무용론도 나오고 있다”며 “방판은 직원 한 명이 각자 지점의 역할을 맡으므로 영업이익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복사와 서류 작성 등에 쓰이던 종이를 전자문서로 대체해 얻는 비용절감 효과도 크다. 태블릿PC에 직접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기 때문에 종이 신청서가 필요없다. 신분증 복사는 태블릿PC에 내장된 카메라 촬영으로 대체한다. 금투협은 증권사당 연간 30억 원의 종이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 펀드 판매까지 돼야 ‘진짜 방판’
신한금융투자는 현재 전국 각 지점에 184대의 태블릿PC를 보급했고 이달에 450대를 추가로 지급할 계획이다. 올 들어서만 127개의 계좌를 방판을 통해 개설하는 등 성과도 거뒀다. 한화투자증권도 전 영업점 프라이빗뱅커(PB)에게 태블릿PC 600여 대를 나눠줬다.
증권업계는 현재 계좌 개설에만 국한된 서비스를 금융투자상품 판매와 매매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올 상반기까지 주가연계증권(ELS)과 펀드 등 금융투자상품 판매 시스템을 마련하고 매매 시 자문 서비스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박명구 미래에셋증권 업무혁신팀장은 “영업직원이 언제 어디서든 고객을 방문해 상품 계약과 매매를 돕는 고객별 금융집사 서비스가 보편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이 서비스가 보편화하려면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다. 금융투자상품 판매가 방판법 8조 1항에 기재된 ‘14일 이내 청약 철회’ 조항의 영향을 받는지 유권해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방판법에 따르면 상품에 이상이 있으면 고객이 14일 내에 청약을 철회할 수 있다. 펀드는 일단 가입하면 손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고객이 계약을 해지할 경우 손실분을 누가 떠맡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금투협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유권해석을 맡긴 상태로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초에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현재 금융투자상품의 성격을 가진 보험상품은 방판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며 “보험과의 형평성, 사회에 미칠 파급력 등을 고려해 신중히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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