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물러났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10년 3월 24일 경영에 복귀한 지 3년째를 맞는다. 복귀 후 일성(一聲)으로 위기를 경고한 이 회장은 3년 내내 ‘위기경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 결과 삼성은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했다. 2010년 290조 원이던 그룹의 글로벌 매출은 지난해 380조 원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삼성전자, 그중에서도 스마트폰을 뺀 나머지 사업은 여전히 정체 상태이고, 미래 먹거리로 선정한 5대 신수종(新樹種) 사업도 이렇다할 성과를 못내 질적인 면에선 평가를 미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 과감한 투자로 위기 정면 돌파
이 회장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제너럴모터스(GM)가 파산하고, 일본 도요타가 대규모 리콜로 흔들리던 시기에 복귀해 특유의 과감한 결단과 위기경영으로 어려움을 헤쳐 나갔다. 그는 복귀 후 두 달 만에 태양광, 자동차용 전지, 의료기기, 발광다이오드(LED), 의료기기 등 5대 신규 사업에 10년간 23조3000억 원을 투자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기존 경영스타일도 과감히 바꿨다. 복귀 이듬해인 2011년 삼성테크윈의 비리사건이 터지자 대대적인 계열사 경영진단을 실시한 뒤 사업이 부진한 액정표시장치(LCD) 담당 사장을 경질하는 등 문책성 인사를 했다. 정기인사 외에는 사장단을 바꾸지 않는 관행을 깬 것이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복귀한 이 회장은 새로운 철학과 위기의식을 불어넣는 등 근본적인 경영 한계를 극복하며 그룹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신규 사업의 성과는 아직 미흡하다. 5대 신규 사업 중 의료기기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는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다. 태양광과 LED 사업은 시장 상황 악화로 숨고르기를 하는 양상이다. 삼성그룹이 현재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19개 사업 분야 가운데 지난 3년 사이 1위에 오른 분야는 스마트폰(2011년)과 리튬이온 2차전지, 중소형 디스플레이 패널(이상 2010년)에 그친다.
○ 경제민주화 역풍도 과제
사업 외적인 분야에선 어려움이 많았다. 복귀 2년째인 2011년 “한국 경제는 낙제점을 면한 수준”이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고, 사회적으로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강한 역풍을 맞았다.
친형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낸 상속소송으로 ‘재벌가 재산 다툼’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화성 반도체공장의 불산 누출 사고로 2007년 삼성중공업 태안 기름 유출 사고의 악몽이 재연되고 있다.
이 회장은 건강에 대한 우려로 두 달 넘도록 하와이 등 해외에 체류하는 등 110일 동안 서초사옥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 22일 그룹 창립 75주년 기념일도 그룹 차원의 행사 없이 조용히 지낼 분위기다.
이 회장 복귀 당시 부사장이었던 맏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두 단계 승진하며 후계 경영체제를 다졌지만 공식적으로는 승계라는 말을 꺼내지 않는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경영성과와 별개로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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