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경제]‘중국산 합판’ 둘러싼 韓美의 미묘한 공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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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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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서도 미국에서 합판 주문이 계속 밀려들어 생산능력이 뒤따르지 못하는 업체들은 주문을 골라가며 받고 있다. 이런 추세는 최소 상반기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이고 하반기에는 주문이 더욱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있다.’

1981년 2월 4일 ‘해외에서 합판주문 밀려 수출 배짱’이란 제목으로 동아일보 경제면에 실린 기사의 내용입니다. 1980년대 초까지 합판은 한국의 효자 수출 품목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상황이 180도 다릅니다. 연간 6500억 원 규모인 국내 합판시장의 38%는 중국산이 차지하고 있고 국산 비율은 27%에 그칩니다.

지식경제부 산하 무역위원회는 21일 중국산 합판에 덤핑 예비판정을 내렸습니다. 중국 합판업체들이 싼 가격을 무기로 한국 시장을 점령하자 견디다 못한 국내 합판 제조업체들이 정부에 덤핑 여부를 조사해 달라고 신청한 데 따른 결과입니다. 무역위는 올 하반기에 국내 산업의 피해 수준을 따진 뒤 덤핑방지관세 부과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는 이번 덤핑 판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통상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힘겨루기 판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미국 상무부가 중국산 합판에 대한 반덤핑관세 조사에 들어가자 한국 정부는 다음 달인 11월에 같은 내용의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한국 무역위가 이번 예비판정을 결정하기 한 달 전인 올 2월, 미국 정부는 최대 27.16%의 상계관세 예비판정을 중국산 합판에 내렸습니다. 우연의 일치로만 보이지는 않습니다. 한국 정부가 아무리 손사래를 쳐도 중국으로서는 한미 양국이 자국 제품에 대해 ‘찰떡궁합’으로 통상 압력을 가하는 것이 곱게 보일 리 만무합니다.

물론 이번 한국 정부의 조치가 2002년 마늘파동 같은 대형 ‘통상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한중 양국 모두 최근 새 정부가 출범했고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안보 공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합판 덤핑 같은 소소한 이슈가 크게 부각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양국 간 견해차로 삐걱대고 있고 미국이 자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하라고 한국에 압력을 가하는 마당에 이번 사건이 차후 양국 간 무역 분쟁의 불씨가 될 소지도 아주 없진 않습니다. 이래저래 새로 통상정책을 맡을 산업통상자원부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국익을 잃지 않으면서 마찰도 빚지 않는 ‘솔로몬의 지혜’가 절실한 때입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합판#한국#미국#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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