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적합업종 1년6개월, 중기는 웃지 못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5일 03시 00분


대기업, 규제 허점 피해 신제품 출시… 포장두부 중기점유율 고작 0.1%P 올라
순대 등엔 중견기업이 자리 차지해 “동반성장위 권고 모호… 사실상 무의미”

중소기업적합업종 제도가 도입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대기업이 무분별하게 중소기업과 골목상권의 영역까지 침범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로 동반성장위원회는 2011년 9월부터 현재까지 제조업 84개 품목, 서비스업 14개 업종을 중기 적합업종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두부, 순대, 고추장 등 2011년 큰 관심을 모았던 주요 품목의 시장을 점검한 결과 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견기업이 새로 진입하거나 대기업이 권고안의 허점을 파고든 사례도 포착됐다.

○ 중기 포장두부 점유율 제자리

24일 시장조사업체 AC닐슨에 따르면 포장두부(낱개로 포장된 네모난 두부) 오프라인 시장에서 중소기업의 점유율은 2011년 평균 18.6%에서 지난해 18.7%로 0.1%포인트 증가했다. 매출로 따지면 3억6290만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2011년 11월 동반성장위는 대기업에 포장두부 사업 확장을 자제하고, 식당이나 급식업체에 납품하는 포장용 대형 판두부 사업 철수를 권고했다.

그러나 CJ제일제당이 그해 말 두부 함량 30% 이상인 가공두부를 출시한 데 이어 풀무원도 이듬해 5월 가공두부 시장에 뛰어들었다. 판촉활동도 줄이지 않았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풀무원, CJ제일제당 대상FNF 등은 동반성장위 권고 이후에도 하나를 사면 하나를 공짜로 주는 ‘1+1 마케팅’을 줄이지 않았다”며 “공정거래위원회가 2월 식품업계 불공정거래에 대한 직권조사를 하자 비로소 4월부터 판촉을 줄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사조대림은 두부의 중기 적합업종 선정 논의가 이뤄지고 있던 동반성장위 권고 5개월 전에 포장두부 시장에 진출했고, 아워홈은 권고 6개월 전부터 ‘행복한맛남’이라는 브랜드로 3kg짜리 대형 판두부를 팔았다. 동반성장위가 규정한 대형 판두부가 7.5kg 제품을 뜻하기 때문에 3kg 제품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허점을 노렸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제조자개발생산(ODM) 또는 자가브랜드생산(OBM) 방식으로 전환하라는 동반성장위의 권고를 지킨 기업은 CJ제일제당뿐이었다. 최선윤 한국연식품협동조합연합회장은 “동반성장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대기업이 강행해도 막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워홈이 철수한 순대시장에는 중견기업이 파고들었다. 동반성장위가 순대 소매시장에서 대기업 철수를 권고한 지 1년 뒤인 지난해 9월 중소기업기본법 상으로는 대기업이지만 사실상 중견기업으로 분류되는 진주햄은 대형마트에서 순대를 팔기 시작했다. 조성대 한국순대산업협동조합 전무는 “한 대기업이 순대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OEM을 할 중소기업을 지난해 말부터 물색하고 있다는 제보도 들어왔다”며 “대기업의 OEM 제의를 받아들인 중소기업은 의존도가 높아져 대기업이 가격을 후려칠 때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애매모호하고 현실성 낮은 권고안

동성장위의 권고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대기업들 탓도 있지만 권고 자체가 애매모호하거나 무리한 대목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동반성장위가 ‘대기업은 저가제품 시장에서 철수하라’고 권고한 고추장이 대표적이다. AC닐슨에 따르면 1, 2위 업체인 CJ제일제당과 대상FNF 등 대기업 점유율은 지난해 연평균 89.3%로 2011년(88.8%)보다 올랐다. 남윤기 한국장류협동조합 전무는 “동반성장위가 저가제품의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아 사실상 무의미했다”며 “중기적합업종 제도가 없었을 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의해 나름대로 영역을 지켜왔는데 오히려 환경이 악화됐다”고 하소연했다.

2월 발표한 서비스업 적합업종 중 ‘대형서점은 홈페이지에서 동네 서점의 위치 안내 및 도서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한 권고안도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도서검색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동네 서점이 재고 목록을 전부 알려줘야 하는데 이게 가능하겠냐”며 “아직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동반성장위가 지금까지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해 권고안을 발표하는 데 치중했지만 이제는 사후관리를 병행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며 “대기업들도 진심으로 중소기업 및 골목상권과 상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중소기업적합업종#포장두부#중기점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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