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반 프로야구와 프로축구가 차례로 출범했다. 1997년과 2005년에는 농구와 배구에도 프로리그가 생겼다. 삼성, 현대, LG 등 대기업들은 매년 적게는 수십억 원에서 많게는 수백억 원씩 쏟아 부으며 프로구단을 운영했다. 국내에서 ‘스포츠 마케팅’이라면 당연히 프로구단 운영과 프로리그 후원을 뜻했다.
최근 그 기류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30년 가까이 프로스포츠에 치중하던 기업들이 점차 생활스포츠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생활스포츠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스포츠 후원을 잠재 고객들과 직접 만나는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 너도나도 사회인야구 후원
25일 국민생활체육회에 따르면 전국의 생활체육 동호인 수는 2009년 말 143만 명에서 작년 말 364만여 명으로 3년 사이 2.5배로 늘어났다.
가장 눈에 띄는 종목은 야구다. 프로야구 700만 관중 시대를 맞으면서 직접 야구를 즐기는 사회인야구 동호인도 급증했다. 현재 국민생활체육 전국야구연합회에 등록된 야구팀만 1만4000여 개이고, 참가 인원은 약 11만 명에 이른다. 미등록팀까지 포함하면 전국 2만5000여 개 팀에서 25만 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현대자동차는 다음 달 6일부터 전국 64개 사회인 야구팀을 초청해 아마추어 야구대회 ‘더 브릴리언트 베이스볼 클래식’을 연다. 현대차는 이 대회 운영을 국내 프로모션팀에 맡겼다. 임동식 국내 프로모션팀장은 “야구라는 팀 스포츠를 통해 더 많은 고객과의 스킨십을 늘리기 위해 사회인 야구대회를 추진했다”며 “각 야구팀에 ‘서포트 요원’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사원을 1명씩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근 내수시장에서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는 현대차로서는 30, 40대 핵심 고객층과의 스킨십을 확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현대차는 경기장 주변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맥스크루즈와 싼타페 등 아웃도어 활동에 적합한 차량을 전시할 계획이다.
LG전자는 지난해 9∼11월 ‘LG배 한국여자야구대회’를 개최해 화제가 됐다. 전국 28개 팀 500여 명의 여성 사회야구인들이 주말마다 전북의 익산야구장에서 열띤 경합을 벌였다. LG전자 측은 올해도 같은 대회를 개최해 여성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프로야구단을 후원하기에는 비용이 부담스러운 업체들도 사회인 야구로 눈을 돌렸다.
AJ렌터카는 2011년부터 사회인 야구대회를 열고 있다. 이 회사는 대회 참가를 위해 지방에서 올라오는 팀에 무료로 승합차를 대여해준다. ‘AJ홈런존’으로 홈런을 친 참가자들에게는 차량 무료이용권까지 준다. AJ렌터카 관계자는 “야구를 하려면 배트, 글러브 등 장비가 많이 필요한 데다 경기장이 대부분 서울 외곽지역에 위치해 렌터카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오비맥주는 야구대회에 맥주의 주요 소비층인 20, 30대 젊은 남성들의 참여가 높다는 점을 감안해 젊은층을 타깃으로 하는 맥주 브랜드 ‘카스’를 내세워 2011년부터 사회인 야구대회 ‘카스 파이널’을 후원하고 있다. AJ렌터카와 오비맥주 두 곳 다 현재 3회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 르노삼성은 스키대회… KT는 유소년 농구대회… ▼ ○ 다른 생활스포츠로도 확대
생활스포츠 지원은 야구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올해 1월 25∼27일 강원 홍천군 비발디파크 ‘QM5 살로몬 스키 챔피언십’을 후원했다. 이 회사가 동계스포츠 브랜드인 ‘살로몬’과 협약을 맺고 스키대회를 후원한 것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 ‘QM5’의 활동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회사 측은 대회 우승자에게 ‘QM5 살로몬 에디션’을 제공하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2010년부터 아마추어 골프대회인 ‘아시안 아마추어 챔피언십(AAC)’을 후원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골프 유망주들이 참가하는 이 대회를 후원함으로써 삼성전자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겠다는 전략이다.
KT도 부산 지역에서 유소년 농구대회를 열고 있고, 프로야구 10구단 창단에 맞춰 사회인 야구로도 보폭을 넓힐 계획이다. KT 관계자는 “다음 달 1일 KT스포츠가 설립되면 생활스포츠 지원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는 지난해 10월 서울시와 마라톤대회 ‘위 런 서울’을 공동 주최하기도 했다. 20대 여성을 주 타깃으로 올 5월에 개최할 ‘쉬 런 서울’ 행사도 티켓 오픈 20분 만에 마감됐다.
기업들이 이처럼 아마추어 및 생활스포츠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 중 하나는 비용대비 효과가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강준호 서울대 교수(체육교육학)는 “프로야구단 후원은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팀이 매번 좋은 성적을 낼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며 “아마추어 대회는 후원 부담도 적은 데다 사회공헌활동 이미지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프로스포츠 지원에서 얻을 수 없는 가치를 생활스포츠에서 찾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박혜란 SK텔레콤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실장은 “요즘 기업 마케팅의 키워드는 ‘진정성’이다”라며 “어떻게 하면 고객의 삶 속으로 친밀하게 다가가 기업 상품이나 브랜드를 어필하느냐의 싸움인데 생활스포츠는 가장 훌륭한 무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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