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무너지는 부동산시장]<하>거래 발목잡는 규제… 전문가 20명 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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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7일 03시 00분


“집값 급등 당시의 철지난 규제 뽑아야 부동산 빙하 풀린다”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다가 지난해 은퇴한 신모 씨(57)는 서울 은평구에 있는 전용면적 96m²짜리 아파트를 사서 살고 있다. 신 씨는 이곳 외에도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단독주택 1채를 더 가지고 있다. 한때 이 단독주택을 헐고 도시형 생활주택을 지을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매달 고정 수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최근 마음을 돌렸다.

건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평구 아파트를 팔려고 내놨지만 도무지 집이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차선책으로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다세대·다가구를 지을 때 연리 2%에 돈을 빌려준다는 국민주택기금 사업자 대출을 알아봤다. 하지만 이미 지난해 말로 혜택이 종료됐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월 100만 원을 벌었을 때 30만 원 정도는 소득세로 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었다.

신 씨는 “소득세, 대출이자에 관리비까지 물면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힘들어 보여 포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지 않으면 주택 건설 수요가 극도로 위축된 ‘부동산 빙하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주택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거래라도 정상적으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규제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집값 급등기에 도입된 불합리한 규제를 한꺼번에 정리하지 않고 찔끔찔끔 풀 경우에는 불황의 ‘내성(耐性)’만 키운다는 것이다.

본보가 부동산 전문가 20명을 긴급 설문조사한 결과 ‘새 정부가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부동산 규제’로는 ‘취득세 양도세 등 거래 관련 세제’(40.0%)가 꼽혔다. 이어 △다주택자 규제(27.6%)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금융 규제(13.3%) △분양가 상한제(10.5%)가 뒤를 이었다.

○ 취득세 양도세, 다주택자 규제는 시대착오적

거래세제 완화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취득세 감면이다. 취득세 감면 연장안은 최근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했지만 6월이면 시효가 끝난다. 한시적 감면만으로는 수요를 ‘당겨쓰게’ 할 뿐 근본적으로 시장을 살리는 효과는 거의 없다.

정태희 부동산써브 리서치팀장은 “3개월, 6개월 단위의 단기간 감면을 반복하다 보면 시장이 살아나기 힘들다”며 “매수자가 시장에 참여할까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도록 여유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생애 최초 주택 취득자 등 자격을 한정해서라도 취득세를 영구 감면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도세 과세 이연제도’도 언급된다. 미국 등에서 10년 전까지 시행한 제도로 원래 가진 집보다 비싼 집을 사면 양도세를 과세하지 않는 제도다. 보유 주택 매각 양도차익을 새집을 사는 데 모두 썼다고 보는 것이다. 대신 나중에 집을 팔게 되면 과거 양도세까지 한꺼번에 내야 한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거래 자체가 일어나지 않는 시장에서 무조건 양도세를 매기는 것에 대해서는 다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주택자 규제도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값이 뛸 때 투기를 막기 위해 도입됐던 규제가 지금은 주택 거래의 숨통을 틀어막고 있기 때문이다.

권모 씨(57)가 대표적 사례. 15년 넘게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3년 전 ‘임대소득이라도 얻어 볼까’ 싶어 은평구에 소형 아파트를 산 게 큰 화근이 되었다. 2주택자가 된 그는 양도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대 중반인 자녀의 결혼비용이 걱정되기도 해 송파구 아파트를 팔아보려고 했지만 양도세가 무서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15년 전 3억 원이었던 송파구 아파트가 9억 원으로 뛰어 양도세 중과가 유예된 현재도 세금을 1억5000만 원이나 내야 한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가 폐지되지 않을 경우 올해 안에 집을 팔지 못하면 세금은 3억 원을 훌쩍 넘게 된다.

권 씨는 “다주택자가 되면 취득세와 양도세가 중과되고 주택 장기 보유에 따른 소득공제를 받을 수 없게 되는 등 온갖 불이익을 당한다”며 “주택 거래 자체가 죽은 마당에 세금이 해결되면 현 시세보다 더 낮은 가격에 집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권 씨와 같은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주택이 시장에 풀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에는 임대시장에 이 집들이 풀려 그나마 전월세 가격 안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다주택자가 세금폭탄을 피하려고 연말까지 한꺼번에 매물을 쏟아내면 집값이 급락하고 그 피해가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김용순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제 집값 급등 시대는 끝난 만큼 다주택자를 ‘투기꾼’이 아니라 주택 거래를 떠받쳐줄 구매력 있는 수요자로, 또 부족한 전월세 임대주택을 공급할 구원투수로 봐야 한다”라며 “다주택자에 대한 인식을 바꿀 때”라고 말했다.

○ 대책 따로, 법안 통과 따로

법인이 보유한 주택이나 비(非)사업용 토지를 팔면 법인세를 더 내야 하는 규정도 없애 연기금 같은 기관투자가들이 임대시장 공급자로 들어오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도 현실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가계 부채 부담이 큰 만큼 완전 자율화보다는 한도를 조정하는 식으로 부분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한두 가지 정책으로 시장 분위기를 바꾸기 힘들기 때문에 ‘종합처방전’을 내놓아야 주택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은 한두 가지 대책에 시장이 반응할 시기가 아니다”라며 “규제에서 자율로 부동산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규제 완화가 결실을 보려면 정부의 ‘정치력’이 필수적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아무리 내놔도 국회가 발목을 잡으면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취득세 감면 연장안도 새 정부가 약속했던 사안이지만 법안이 통과되는 데 3개월이나 걸렸다. 이 때문에 1월 전국 주택 매매 거래량은 2만7000건으로 전월에 비해 75%나 줄었다. 정부가 집계를 시작한 2006년 이후 최저치. 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도 7만5180채로 전월(7만4835채)보다 345채 증가했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분양가 상한제 탄력운용제) 등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 법안은 민주통합당이 당론으로 반대하고 있어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에서 내놓은 부동산 정책들이 국회에서 발목 잡히기 일쑤였다”며 “정부가 정치력을 발휘해 국회를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윤정·정임수 기자 yunjung@donga.com
#부동산#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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