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이던 지난달 29일 오후 6시, 업무를 마친 LG전자 직원 120명이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33층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각각 자신의 이름과 소속 부서가 적힌 빨간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었다. 참석자의 나이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고 소속 부서도 소재부품팀, 컨버전스팀, 모바일커뮤니케이션스(MC)연구소, 인사팀, 검색팀 등 제각각이었다. 이들이 퇴근 후 ‘불금(불타는 금요일)’도 포기한 채 이곳에 모여든 이유는 ‘이그나이트(Ignite) LG’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점화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인 ‘이그나이트’는 지식강연인 ‘테드(TED)’와 흡사한 일종의 지식나눔 행사다. 주제에 관계없이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정보나 지식을 자유롭게 소개하는 자리다. 2006년 미국 미디어그룹인 오라일리가 처음 개최했고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에 이어 최근 국내에서도 서울과 광주 등에서 열렸다.
국내 기업 가운데 이그나이트를 연 건 LG전자가 처음이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지식을 나눌 수 있도록 해 창의력을 북돋는 조직문화를 만들어 보자는 취지다.
LG전자 측은 “대기업은 조직이 크고 분위기도 딱딱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경험을 들을 기회가 적다”며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올릴 법한 정보를 캐주얼하게 나누다 보면 오프라인에서도 자연스레 지식나눔 문화가 정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사전에 사내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받은 발표 신청 접수 경쟁률은 2 대 1로 당초 예상보다 높았다. 관람을 신청한 직원도 200명을 넘었다. 왁자지껄하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어색함을 깨는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이 끝나고 행사가 시작됐다.
발표자들은 헤드마이크를 쓴 채 무대에 올라 수다를 떨듯 발표했다. 이날 발표자들에게 주어진 원칙은 한 가지였다. 최대한 간결하게 핵심만 설명하는 것이다. 청중이 ‘지루하다’고 느끼는 순간 지식나눔이 아닌 지식강요가 되기 때문이다. 발표자가 무대에 오르면 미리 준비한 20장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15초마다 자동으로 넘어가도록 해 발표 시간이 총 5분을 넘기지 못하게 했다.
완벽한 프레젠테이션도, 아주 전문적인 콘텐츠도 아니었지만 각자 자신이 일을 하면서, 또는 평상시 삶 속에서 얻은 지식과 노하우를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전달했다.
스마트폰을 연구하는 김창목 MC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경쟁사인 삼성전자의 마케팅 전략을 이야기했다. 그는 “삼성전자가 최근 서울 강남의 한 클럽에서 스마트폰 기능을 소개하는 플래시몹 행사를 열었다”며 “경쟁사이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함께 칭찬하고 공유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레고 6000만 원어치를 소장하고 있는 김제헌 ‘검색/추천팀’ 과장은 “레고는 블록 2개만 있어도 24개 조합이 가능하다”며 “무한한 창조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레고사의 성공 비결”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아프리카로 봉사를 다녀온 솔라(solar)제품개발팀 김상훈 선임연구원은 적정기술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관객들이 직접 뽑은 최고의 발표는 간단한 작곡법을 소개한 조대득 MC연구소 주임연구원에게 돌아갔다. 주말엔 홍익대 앞에서 인디밴드 보컬로 활동한다는 조 연구원은 “누군가의 귀한 5분 동안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애쓴 준비 과정 자체가 즐거운 도전이었다”며 “다양한 영역에서 자기 색깔을 가진 발표자들의 삶을 공유할 수 있어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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