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환율전쟁]<3>파국이냐 진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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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5일 03시 00분


“환율전쟁 격화땐 모두가 패자”… 美-中-日 합의 도출 가능성

강형구 한양대 교수
강형구 한양대 교수
전 세계적으로 경기 불황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지금, 많은 국가들은 수출을 통한 경기회복을 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환율전쟁이란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환율전쟁이란 수출 증대, 수입 축소를 목적으로 각국이 경쟁적으로 자국 화폐의 가치를 끌어내리는 것을 말한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면 해외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에 유리하다.

환율전쟁의 가능성은 각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화폐, 금융 정책까지 총동원하는 상황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경기 회복이 뚜렷해질 때까지 유동성을 공급하겠다고 밝혔고, 유럽중앙은행은 무제한 국채 매입을 선언했다. 일본은 4일 앞으로 2년간 화폐공급량과 장기국채 보유량을 2배로 확대하기로 밝히는 등 무제한 양적완화와 저환율 정책을 노골적으로 펴고 있다. 중국 역시 자국 화폐의 가치 상승을 용인하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원인이었던 엔화 가치의 급격한 상승을 기억하고 있다. 이를 초래한 플라자합의를 염두에 두면서 일본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21세기 환율전쟁의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다.

○ 환율전쟁 시나리오

①시나리오1(평화적 해결)
환율전쟁이 오히려 세계경제의 회복을 위한 해결책이라는 관점에 근거한다. 각국의 화폐 가치 하락은 각국이 추구하는 통화 팽창의 단순한 부산물이며, 이는 현 상황에서 바람직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경기는 차차 회복되고 선진국의 양적완화는 오래가지 않는다. 양적완화로 이자율이 낮아지고, 소비와 투자를 자극해서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수입이 늘어나서 무역전쟁의 가능성도 낮아진다.

②시나리오2(무역전쟁)
화폐전쟁이 무역전쟁으로 번지는 경우다. 자국 통화만 경쟁적으로 약화시키려는 시도는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고 통상 마찰을 확대시킨다. 이에 대한 가능성은 벌써 몇 가지 사례에서 나타났다.
미국 하원은 환율 조작국가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공정무역을 위한 환율개혁법안’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미국 상원도 ‘통화환율감독개혁법’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법안들은 중국을 타깃으로 한 법안이어서 중국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무역전쟁을 야기할 것이란 시나리오를 제기하는 이들은 1930년 대공황의 예를 든다. 당시 각국은 금을 기준으로 화폐를 찍는 금본위제를 폐기하면서 경쟁적으로 환율을 높였다. 이는 주요 국가의 보복관세 정책을 확대시키면서 국제무역 축소로 이어졌다.

③시나리오3(세계경제질서 재편)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무리한 정책이 달러화의 신뢰도를 하락시키고, 유로존에 위기가 닥쳐 유로화의 폭락과 붕괴가 일어나는 상황이다. 세계 금융시스템 전반에 악영향을 주면서 금본위제 같은 대안이 등장할 수 있다.

○ 환율전쟁, 파국으로 치닫진 않을 것

그렇다면 향후 환율전쟁은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까.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환율전쟁이 더 격화될 가능성은 있지만 파국적인 수준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환율조작을 통한 무역수지 개선은 한계가 있고 부작용도 크기 때문이다. 환율전쟁이 심해지면 뚜렷한 승자 없이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만 가중될 수 있다.

글로벌 환율 문제는 게임이론의 ‘죄수의 딜레마’와 비슷하다. 두 공범자가 서로를 믿고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형량이 매우 낮아지지만 서로를 믿지 않아 둘 다 자백하면 동시에 처벌받게 된다. 환율 시장에서도 모든 참가자가 시장 자율에 맡길 경우 안정적인 균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참가자들이 인위적인 환율조작에 나서면 균형은 깨지게 된다. 그러나 ‘죄수의 딜레마’ 게임이 반복되면 상호 간에 협조적 균형이 생긴다고 보는 경제학 이론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향후 글로벌 환율전쟁은 심화되기보다는 어느 수준에서 국제적 합의에 이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아베노믹스’에 의한 일본발 환율전쟁의 가능성도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한다. 그동안 엔화의 가치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어 왔던 것도 인정해야 한다. 잠재성장률 자체가 침체되어 있는 일본에서 엔저(円低) 기조는 앞으로 오랫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 환율전쟁의 양대 축인 미국과 중국 역시 ‘진짜 전쟁’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중요한 무역 파트너이다. 경제 외에도 정치와 외교 등 각종 분야에서 협력이 필요하다. 두 국가 모두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무엇보다도 미국한테 달러화의 기축통화 유지는 매우 중요하며, 이런 이유로 미국은 환율전쟁을 용인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시나리오3’처럼 향후 달러화의 붕괴로 세계경제 질서가 재편될 가능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환율 같은 변수가 아니라 생산성과 혁신 등 한층 더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변수에 의해 달성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일부 전문가들이 말하는 금본위제 체제로의 변화는 각 국가들이 경제주권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을 것으로 본다. 화폐통합 후 어려움을 겪는 유로존의 위기를 전 세계로 확장하고, 이전 금본위제의 문제점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 용어 설명 ::

플라자합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이 1985년 9월 22일 뉴욕의 플라자호텔에서 달러화 대비 독일의 마르크화와 일본의 엔화 가치를 끌어올려 미국의 불황을 타개하고 무역 적자를 줄이고자 한 합의.

금본위제
금에 비례해 화폐를 찍어내는 제도.

죄수의 딜레마
양측이 서로 협력하면 둘 다에게 가장 이익이지만 개인적 욕심과 상대방에 대한 불신으로 결국 모두 손해를 보는 상황에 직면한다는 이론.

강형구 한양대 교수
#환율전쟁#플라자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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