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경제]“하필 지금…” 北리스크에 꼬여버린 ‘외평채 프로젝트’

  • Array
  • 입력 2013년 4월 11일 03시 00분


“출국하기 전, 이발소부터 들렀죠. 채권 발행 잘 마무리하고 돌아오면 신문에 멋지게 사진이 실릴 줄 알았거든요.”

2008년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에서 외화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업무를 맡았던 한 관료의 후일담입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가 “한국이 검은 9월로 향하고 있다”며 ‘9월 위기설’을 퍼뜨리던 당시 보란 듯이 콧대를 꺾겠다며 미국 뉴욕으로 날아갔던 기재부 관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월가의 큰손들로부터 “여기도 돈줄이 말랐다. 그냥 돌아가라”는 대답을 듣고 참담함을 감출 길이 없었습니다..

외평채 발행 실패는 그해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주곡’이었습니다. 코스피가 1,000 선이 무너졌고 원-달러 환율은 1500원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정부와 금융당국은 당시의 ‘외평채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2009년 4월(30억 달러)을 끝으로 정부는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3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이 3274억 달러에 달할 정도로 곳간 사정이 넉넉한 이유도 있지만, 당시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탓도 큽니다.

정부가 4년 만에 외평채 발행 검토에 착수했습니다. 기재부는 지난주 골드만삭스 산업은행 등 6개 금융사를 발행 주간사 회사로 선정하고 의향서를 돌렸습니다. 겉으로는 “6월 말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을 갚기 위한 용도”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지난해 3대 신용평가사가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 만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그에 걸맞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 보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북한발 변수’가 상황을 꼬이게 만들고 있습니다. 북한의 위협이 커지면서 한국의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9일 기준 0.85%)은 7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습니다.

해외에서 유통되는 대표적인 한국물인 ‘산업은행 5년물’ 가산금리는 열흘 새 25%나 뛰었습니다.

주요 외신은 “이렇게 나쁜 자금조달 여건에서는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어떤 기관도 채권을 발행하기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정부로서도 10억 달러가 없어서 외화 곳간이 동날 정도로 사정이 나쁘지도 않습니다.

국책은행의 한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을 처리하는 것 말고는 시장에 나서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당장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세계 금융시장 상황에 따라 국내 여건이 더 나빠질 요인은 충분합니다.

‘돈’의 움직임만큼 냉정한 건 없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냉철한 판단과 철저한 대책이 필요한 때입니다.

이상훈 경제부 기자 january@donga.com
#톡톡경제#외평채 트라우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