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이라는 과목을 처음 접했을 때 ‘이런 것도 학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생각은 바뀌었다. 물건을 팔기 위해 과장하는 게 아니라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다 보니 기호(sign)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인간은 언어, 문자, 동작 등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 하지만 모든 사물은 다 나름대로 어떤 의미를 전한다. 이 때문에 내 생각을 남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호의 의미를 푸는 것에 호기심을 갖는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나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그래서 베스트셀러가 됐을 것이다.
롤랑 바르트가 1960년대 후반 일본을 여행하고 나서 쓴 ‘기호의 제국’은 200쪽이 채 안 되는 분량이다. 이 책은 일본의 다양한 문화현상과 관련된 기호학적 표식을 다룬 일종의 비평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일본은 실체라기보다 바르트가 만들어낸 하나의 체계라 할 수 있다.
책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만약 내가 허구의 한 나라를 상상한다면…새로운 가라바니(Garabagne)로 만들 것이다…나는 이 체계를 일본이라 부르겠다.”
이 유명한 프랑스 기호학자의 눈에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동안 자기가 인식했던 기호, 즉 유럽인들끼리 주고받았던 그 무엇과 다른 신기함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의 번역자는 ‘가라바니’를 해석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심지어 “가라바니의 정확한 뜻과 출전을 알고 계시는 분은 역자에게 알려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주석에 써놓았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당시 나름대로 내 의견을 보냈는데 회신이 없었다. 아마 틀렸거나 엉뚱해서 답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3년 전 또다시 엉뚱한 호기심이 발동해 ‘가라바니’라는 기호를 풀어보려고 애썼다.(관심 있는 독자는 lagarabagne.com에 들어가 보시기 바란다.)
기왕 기호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니 한 가지만 질문을 던지겠다. 영국 런던대의 숀 홀은 저서 ‘기호학 입문, 의미와 맥락’의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길에서 부처님을 본다면 무엇을 해야겠는가?” 이 대목에서 ‘서양의 과학이 불교를 기호로 접근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뭔가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 들었다. 독자 여러분도 ‘가라바니’와 ‘길에 있는 부처님’에 대한 기호를 풀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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