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SKY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는 경제, 창업했다가 망해도 길거리에 나앉지 않는 경제, 대기업의 발목을 안 잡는 경제, 스티브 잡스가 아닌 사람들도 대박을 내는 경제, 실패가 창조의 밑천이 되는 경제…. 창조경제 개념은 거창하지 않습니다.”(김창경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박진근)가 22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제1차 창조경제 통합토론회: 창조경제에 대한 종합적 접근’에서 경제, 과학, 고용, 교육 등 각계 전문가들은 창조경제에 대한 의견들을 쏟아냈다. 창조경제를 보는 시각에는 분야별, 개인별로 차이가 있었지만 ‘저성장의 덫’에 빠진 한국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려면 창조경제의 육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에 토론회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 “창조경제를 규정하는 게 비창조적”
토론회에서 한양대 김 교수는 “창조경제를 규정하려는 것 자체가 비(非)창조적”이라며 “창조경제의 개념을 논의하는 것보다 창조경제라는 목적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수단을 논의할 때”라고 강조했다.
송종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 역시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말을 인용하며 “그동안의 땀(perspiration)에 의한 성장에서 벗어나 영감(inspiration)에 의한 성장으로 가는 게 창조경제”라며 “창조경제는 학문적 이론보다 실천적인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조경제의 개념이 모호하다 보니 창조경제가 구호로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문형남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교수는 “이명박정부 초반에 ‘녹색성장’이 화두가 되면서 정부 부처는 정책에, 기업은 상품에 ‘녹색’을 갖다 붙이기 바빴다”며 “이명박정부 시절의 녹색이 요즘엔 창조로 바뀌었다”고 꼬집었다.
허승호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김대중정부 시절 추진했던 바이오·문화 등 ‘5T 육성정책’도 현재의 창조경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창조경제는 개념 논의보다 실행에 역점을 둬야 한다”면서 “창조경제 관련 정책은 현 정부뿐 아니라 다음 정부에서도 추진될 수 있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박진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은 “창조경제는 특정 산업이나 영역을 넘어 경제 구조 전체의 융합을 꾀하는 것”이라며 “각 경제주체가 창조경제 패러다임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조속히 이끌어내서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R&D 사업 성공률 95%, 자랑할 일 아니다”
창조경제를 북돋우기 위한 각종 제언도 잇따랐다.
하태정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산업혁신연구본부장은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의 성공률이 95%나 되는 것은 ‘답이 있는 문제’만 풀려는 풍토에 따른 것”이라며 “성공률을 50%로 낮추자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고 전했다. 그는 “창조경제를 추구하려면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만들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분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센터 소장도 “국가 차원에서 창조인력이 모이거나 교류하는 공간, 특허 저작권, 지식재산, 브랜드를 비롯한 사회적 자본 등 이른바 ‘창조자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정민 홍익대 경영대학원 교수(한국창조산업연구소장)는 “창조경제의 핵심은 이종 기업간 융합”이라며 “기업이나 정부가 각 분야의 젊은이들이 얼굴을 맞대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해 창조경제의 씨앗을 틔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그는 “각 분야의 아이디어 뱅크를 융합뱅크로 발전시키고, 기존 산업에도 창의성이라는 유전자를 덧입혀서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창조경제가 꽃을 피우려면 중소기업의 세계시장 진출이 확대되어야 한다”며 “해외시장에서 팔릴 만한 상품을 개발하고 현지 시장을 개척하는 등 중소, 중견기업을 위해 노력했던 ‘고려무역’ 같은 전문 종합상사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산업경제연구센터 소장은 “재벌 때리기 식의 소모적인 방식보다 기업 경영진의 의사결정 범위를 주주 가치뿐 아니라 협력업체와 지역사회, 환경 개선까지 확장해 사회적 책임을 할 수 있는 기업에 재량권을 주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김윤정 한국과학창의재단 미래창의인재단장은 “학교가 창의력을 죽이고 있다”면서 “학급이나 학년에 따라 공장에서 획일화된 방법으로 학생들을 가공하는 방식은 창조경제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 ‘가젤기업’, 지식기반 서비스업 비중 높아
이날 토론회에서는 고용자 수가 급증하는 ‘가젤기업(Gazelle Firm)’의 특성도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가젤기업은 경제학자인 졸탄 엑스 미국 조지메이슨대 교수가 도약력이 뛰어난 아프리카의 가젤에 빗대 만든 용어로 ‘고성장 중소기업’이라는 뜻이다.
김정홍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자리 창출 상위 10% 기업 및 지역의 특성 분석’이라는 논문에서 종업원이 10명 이상이면서 고용창출 기여도가 증가 속도가 모집단 상위 10% 이내인 기업 6848개(2012년)를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가젤기업 중에서는 지식기반 산업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가젤기업 중 지식기반 서비스업 비중은 16.8%로 전체 기업(5.6%)의 3배에 이르렀고, 가젤기업 가운데 지식기반 제조업의 비중 역시 15.1%로 전체 기업(3.3%)의 5배 수준이었다. 김 연구위원은 “창조산업의 대명사인 지식기반 산업의 고용창출 효과가 높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가젤기업은 2007년 직원 191명의 중소기업에서 2012년 371명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같은 기간 가젤기업이 아닌 전체 기업의 90%는 연간 4명씩 고용인원이 줄었다. 가젤기업이 왕성하게 직원들을 채용한 덕분에 전체 기업은 연평균 15명 정도 채용해 전체 고용인원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 “창조산업 비중 5% 미만… 일자리 창출 잠재력은 40%나 높아” ▼
■ 신동천교수, 창조경제 파급효과 분석
영화 건축 출판을 비롯한 한국의 창조산업 종사자 수는 92만 명 정도로 전체 일자리 수의 5%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창조산업의 일자리 창출 효과는 전체 산업 평균보다 40% 가까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신동천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22일 국무총리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런 내용이 담긴 ‘창조경제의 경제적 파급효과: 산업연관 분석’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한국은행의 산업연관표를 바탕으로 공예, 방송, 광고, 건축 및 공학, 컴퓨터 관련 서비스, 출판, 영화, 연극 및 기타 예술, 기타 오락서비스 등 9개 산업, 41개 상품을 ‘창조산업’으로 규정했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 경제에서 창조산업의 비중은 5%를 밑도는 것으로 분석됐다. 창조산업 종사자는 92만 명으로 전체의 4.77%에 그쳤다. 창조산업의 총 산출액과 부가가치의 비중 역시 각각 3.15%, 4.09%에 불과했다.
하지만 창조산업의 일자리 창출 잠재력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종 수요가 10억 원 증가할 때 발생하는 창조산업의 고용유발 효과는 12명으로 전체 산업 평균인 8.7명보다 37.9%나 높았다. 고용유발 효과가 12명이라는 것은 최종 소비자들이 창조산업 관련 서비스나 상품을 10억 원어치 추가로 구매할 때마다 창조산업 기업들이 직원 12명을 추가로 고용하게 된다는 뜻이다.
또 최종 수요가 10억 원 증가할 때 창조산업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8억3000만 원으로 전체 산업 평균(7억 원)보다 높았다. 같은 규모로 소비가 늘어도 창조산업 생산자가 인건비, 재료비를 비롯한 각종 투입비용을 제외하고 얻게 되는 가치가 훨씬 많은 셈이다.
신 교수는 “연구 결과는 창조산업의 범위를 좁혀 보수적으로 분석한 것”이라며 “창조산업이 여타 부문으로 영향을 미치는 스필오버(spill over) 효과까지 감안하면 창조산업의 부가가치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가수 싸이가 국제무대에서 인기를 끌면서 다른 한국 제품의 판매가 촉진되고, 국가 브랜드가 덩달아 상승하는 등 간접적인 효과까지 반영할 경우 창조산업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 클 것이라는 의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가 고용률 70%를 달성하려면 창조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같은 투자라도 창조산업에 할 때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더 크다”면서 “창조경제의 최종 목적은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인 만큼 산업 간 융합,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창조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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