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22일 청와대에서 빌 게이츠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언론은 박 대통령과 빌 게이츠에 주목했다. 긴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채 빌 게이츠의 옆자리를 지킨 남자는 관심 밖이었다. 바로 에드워드 정 인텔렉추얼벤처스(IV) 설립자다.
IV는 직접 특허를 받거나 남의 특허를 사들인 뒤 사용료로 돈을 버는 회사다. 특허료 협상이 잘 안 되면 기업에 소송을 걸기도 한다. 이런 회사를 ‘특허괴물(Patent Troll)’이라 부른다. 다른 기업한테 사용료를 받는 것이 주 목적이기 때문에 기업의 발목을 잡는 ‘괴물’에 비유된다. IV가 국내 기업에 소송을 건 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의 주요 타깃은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제조기업들이다.
빌 게이츠는 2000년 설립된 IV의 주요 투자자다. IV가 주력하는 특허 분야 중 하나는 에너지로, 빌 게이츠가 회장 직함을 가진 테라파워 역시 IV가 소유한 회사다. 외신에 따르면 빌 게이츠는 개인적으로도 차세대 원전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테라파워에 수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테라파워의 기술이 상용화하면 IV는 특허 수익을 올리게 되고, 그렇게 얻은 이익의 상당부분은 빌 게이츠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빌 게이츠는 박 대통령을 만나 “창조경제는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치켜세운 뒤 차세대 원전의 상용화 방안을 논의했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면 ‘특허 장사’ 기회를 만드는 게 진짜 목적이었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빌 게이츠를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처럼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에 자신의 돈을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이야말로 기업가 정신의 핵심이다. 덕분에 세상은 더 편리해지고, 사람들은 더 부자가 된다. 이를 통해 빌 게이츠가 큰 부(富)를 얻는다고 해도 절대 욕먹을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기업가들은 어떤가. 총수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사가 내부거래를 하기만 해도 범죄행위로 낙인을 찍는 등 국회가 논의 중인 몇몇 경제민주화 법안은 기업, 기업가의 경제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부당 내부거래를 가업승계에 활용한 일부 대기업이 단초를 제공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막자고 과도한 규제를 하는 것은 창조경제 시대에 활짝 꽃피워야 할 기업가 정신의 싹을 잘라버릴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요즘 한껏 움츠러든 국내 기업인들이 ‘특허괴물 설립자’와 나란히 앉아 대통령과 사업을 논의하는 빌 게이츠를 보는 심정은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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