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에 이어 최근 유럽까지 양적완화에 돌입하면서 박근혜정부 경제팀의 ‘내우외환(內憂外患)’이 심화되고 있다. 국제 공조를 통한 엔화약세에 대한 대응 방안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가운데 기준금리를 중심으로 정부와 한은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불거지는 안팎의 악재로 새 정부 경제팀의 리더십과 공조체제에 대한 시장의 믿음이 약화될 경우 추가경정예산 편성, 투자활성화 대책 등 정부의 경기정상화 정책이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환율전쟁 고조에 깊어가는 엔화약세 시름
올 초까지 금리인하에 부정적인 태도를 유지했던 유럽중앙은행(ECB)은 2일(현지 시간)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추면서 양적완화 진영에 동참했다. 미국 일본에 이어 유럽까지 ‘글로벌 빅3 경제권’이 모두 양적완화에 돌입한 셈이다.
영국과 호주 역시 양적완화 카드를 꺼낼 채비를 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다음 달 퇴임을 앞둔 머빈 킹 영국은행 총재가 250억 파운드 규모의 추가 양적완화에 지지의사를 밝혔다. 중국의 성장세 둔화와 엔화약세로 수출 전선에 위기감이 고조된 호주와 뉴질랜드도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을 예고하고 나섰다. 여기에 인도가 3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며 올 들어서만 3차례 금리를 낮추는 등 신흥국들도 경기 부양을 위한 양적완화 속도를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계 각국이 다시 양적완화와 통화절하 경쟁에 나서면서 달러당 100엔 돌파를 앞두고 주춤했던 엔화 약세가 다시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공조를 통해 엔화약세에 공동 대응한다’는 정부의 계획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3일 폐막한 ‘제16차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는 ‘선진국의 양적완화에 공동 대응한다’는 선언적 합의에 그쳤을 뿐 공동선언문(코뮈니케)에 일본을 직접 겨냥하는 문구를 포함시키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일본은 회의 직후 태국 등 아세안 주요 5개국과 ‘통화 스와프’ 협정 체결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국과 중국을 따돌리고 동남아국가들을 잠재적 우군으로 삼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수출, 투자 비상에도 금리 갈등은 계속
엔화약세의 가속화는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왔던 수출전선에 대형 악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4월 수출액이 462억9800만 달러로 작년 동월대비 0.4% 증가하는 데 그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엔화약세의 악영향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수출 둔화는 제조업 생산과 투자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광공업생산은 전월보다 2.6% 감소해 지난해 3월(―2.6%) 이후 1년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기준금리를 둘러싼 정부와 한국은행의 잡음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3일(현지 시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총회 참석차 인도 뉴델리를 방문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1∼3월에 ‘정책조합’을 언급한 것은 새 정부에 ‘이제 네가 나설 차례(now it's your turn)’라고 말한 것”이라며 정부를 직접 겨냥했다. 당분간 기준금리 동결기조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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