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큰돈을 버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공사를 발주한 터키 쪽이 좋은 기회를 잡은 걸로 봐야죠.”
약 220억 달러(약 25조 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인 터키 원전 수주전(戰)에서 일본에 밀린 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런 관전평을 내놨습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3일(현지 시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와 터키 앙카라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원전 수출의 사전 절차인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데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터키 원전은 수주 조건이 좋지 않아 ‘손해 보는 장사’일 가능성이 큰 만큼 이번 사업을 놓친 걸 꼭 아쉬워 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었습니다.
한국은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에 성공한 뒤 2010년 터키와 원전 사업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한때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지만 이번에 일본에 사업권을 내줬습니다. 한국이 3년여간 공들여온 터키 원전 사업권을 일본이 따내자 박근혜 대통령이 상당히 아쉬워했다는 후문입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이번 터키 원전 수주 협상에서 터키는 원전 건설비의 상당 부분을 수주국이 자체 조달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한국 측은 우리가 조달하는 자금에 터키 측의 재정보증을 요구했지만 터키는 국가 채무 문제로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런 조건이라면 조달금리가 높아져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일본은 저금리로 원전 사업비 조달금리가 워낙 낮은 데다 한국의 수출입은행 격인 일본국제협력은행(JBIC)이 막대한 자금동원력을 보유해 이런 악조건을 감수할 수 있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해외 원전 수주가 절실해지면서 터키 원전 협상을 성사시키려는 의지가 강한 점도 한몫했습니다.
앞으로도 터키처럼 상대국의 정부가 지급보증을 하지 않는 사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기술력이 좋아도 금융경쟁력이 없으면 대형 원전공사는 그림의 떡이 될 공산이 큽니다.
세계 각국에서 2030년까지 새로 건설할 원전은 430기로 무려 1조 달러에 이릅니다. ‘원전 5대강국’인 한국이 세계시장을 뚫으려면 범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가 대항전’으로도 불리는 원전 수주전에서 한국전력 등 개별 공기업 중심의 시스템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원전 수출을 전담하는 회사인 ‘국제원자력개발’을 세워 도쿄전력과 미쓰비시 등 민관이 함께 뛰고, 정책금융회사가 지원사격을 한 점을 눈여겨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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