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TV 상품기획을 맡고 있는 장문선 대리가 2월 14일 서울 서초R&D캠퍼스에서 열린 스마트 TV 신제품 발표회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4월 25일 열린 ‘갤럭시S4 월드투어 2013 서울’ 행사는 삼성전자가 최신 스마트폰 갤럭시S4를 국내에서 처음 공개하는 자리였다. 외신까지 포함해 수백 명이 현장을 찾았고 온라인에서도 생중계됐다.
그만큼 중요한 행사였지만 이날 무대를 이끈 주인공은 사장도, 임원도 아닌 평범한 과장이었다. 이돈주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 사장은 짤막한 인사말만 했다.
‘과장급이 발표하면 행사의 격이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기자의 오해였다. 황승훈 한국총괄마케팅팀 과장(36)은 15분간 프레젠테이션을 완벽에 가깝게 했다. 딱딱한 넥타이를 풀어버리고 캐주얼한 행커치프로 멋을 낸 황 과장은 긴장한 기색 없이 무대를 활보했다. 전문 행사 MC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이에 앞서 2월 열린 LG전자의 스마트 TV 신제품 발표회에서도 1년차 대리가 프레젠테이션을 맡았다. TV 상품기획을 담당하는 장문선 대리(30·여)가 주인공이었다. LG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신제품 발표를 임원이나 사업부장에게 맡겼지만 올해부터는 제품 개발 및 출시에 참여한 실무자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프레젠테이션 이후 사내외 반응이 워낙 좋아 장 대리는 요즘 세계를 돌며 해외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 월드 투어’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실무자들을 무대에 올리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전자제품의 스마트 기능이 워낙 복잡하고 다양해지다 보니 최대한 쉽고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황 과장과 장 대리는 각각 마케팅, 상품기획 부서에 몸담고 있어 제품의 장단점과 기능, 특징을 정확히 알고 있다.
삼성전자 한국총괄마케팅팀의 황승훈 과장이 지난달 25일 삼성 서초사옥에서 열린 ‘갤럭시S4’ 국내 공개행사에서 국내외 언론과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다양한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둘 다 30대로, 전자제품을 가장 많이 구매하고 사용하는 연령층이기도 하다. 친구들 앞에서처럼 ‘이럴 때 이렇게 사용하면 좋다’고 설명하는 것이 동년배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더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 두 회사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두 사람 모두 무대가 두렵지 않은, 프레젠테이션에 익숙한 세대이기도 하다. 장 대리는 “대학생 때부터 용돈을 벌려고 방송 비디오자키(VJ)로 활동하면서 지방행사 진행을 숱하게 맡았다”고 말했다. 황 과장은 “대학 시절 과제에서 파워포인트(PPT)를 많이 활용했던 게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두 회사가 ‘스티브 잡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프레젠테이션에 더 투자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애플 최고경영자(CEO)였던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은 ‘스티브 노트’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애플의 깔끔하고 전문적인 기업 이미지 구축에 크게 기여했다. 애플은 본사에 프레젠테이션 전담 준비팀을 두고 프레젠테이션에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역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젊고 전문적인 조직’이라는 긍정적인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는 신제품 발표 일정이 확정되면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약 보름간 준비를 한다. LG전자는 제품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부터 마케팅, 영업, 홍보 등 부서별 전문가를 모아 프레젠테이션에 담을 핵심 내용을 정한다. 스크립트(대본)는 마케팅 부서의 전문 카피라이터가 쓴다. 삼성전자 역시 제일기획의 행사운영 전문가에게 지원을 받아 무대를 꾸미고 분야별 사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 프레젠테이션에 담을 프로모션 기법을 공유한다.
누구보다 많이 공을 들이는 사람은 역시 발표자다. 황 과장은 이번 행사의 스크립트를 직접 썼다. 그는 “촬영자와 피사체를 동시에 찍을 수 있는 ‘듀얼샷’ 기능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사진을 찍느라 정작 자신의 모습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아빠들을 떠올려 원고에 넣었다”며 “복잡한 기술이지만 실생활의 예를 들어 설명해 소비자들이 쉽게 이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장 대리는 거의 매일 세계적 지식 강연인 ‘TED’ 등의 프레젠테이션 동영상을 보며 제스처와 발성을 연습한다. 발표 의상을 고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그는 “처음 무대에 오를 때만 해도 내가 예뻐 보이려고 빨간 원피스를 입기도 했는데 이제는 내가 아닌 제품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옷을 찾느라 고민한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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