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콘텐츠산업”… 괴설 같은 창조경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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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5월 9일 03시 00분


■ 지방 주류회사 ‘선양’ 조웅래 회장

4차원(4D) 인체 테마파크를 만들기 위해 최근 공장 내에 시험용 체험관을 만든 조웅래 선양 회장은 “주류회사도 콘텐츠로 승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양 제공
4차원(4D) 인체 테마파크를 만들기 위해 최근 공장 내에 시험용 체험관을 만든 조웅래 선양 회장은 “주류회사도 콘텐츠로 승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양 제공
7일 오후 대전 서구 오동의 한 공장. 소나무가 늘어진 입구 왼쪽 정원에 ‘더 큐브’라고 적힌 검은색 건물이 있다. 문이 열리자 벽에서 가상 캐릭터가 나와 기자를 맞았다. ‘버추얼 스튜디오’라는 방으로 들어서니 놀이동산에서 보던 입체 영화관이 나타났다. 100m²(약 30평) 규모로 좌석은 6개였다. 앉자마자 정자가 꿈틀거리며 난자를 향해 돌진하는 영상에 맞춰 ‘우르릉’ 소리를 내며 좌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쪽, 왼쪽, 오른쪽, 아래쪽 등 네 방향의 화면에 영상이 입체적으로 나타나 마치 실제로 몸속을 탐험하는 느낌이었다. ‘살아있는 인체탐험’이라는 제목의 5분짜리 시험용 영상이 시연된 이곳은 정보기술(IT) 회사가 아니라 주류회사 선양이 만든 4차원(4D) 체험관이다.

○ 25억 들여 크리에이티브 연구소 설립

대전 충남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방 주류회사 공장에 4D 체험관이 들어선 것은 이례적이다 못해 엉뚱할 정도다. 술과 전혀 관련 없는 이 4D 체험관의 아이디어를 낸 것은 조웅래 선양 회장(53)이었다.

조 회장은 3년 전 미술과 IT를 접목한 전시회 ‘살아있는 미술관’을 기획한 김근수 씨를 만나 4D 체험관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조 회장은 2011년 4월 회사에 ‘크리에이티브 연구소’라는 조직을 만들고 김 씨를 연구소장으로 영입했다. 3차원(3D) 입체 영상부터 의자 움직임 기술 등을 도입하는 데 25억 원을 들여 1년도 안 걸려 4D 체험관을 만들었다. 조 회장은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계속 생각하다 보니 나온 결과”라고 말했다.

“주류회사가 술만 파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주류회사도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평소 ‘인체의 신비’에 관심이 많았는데 실감 나는 방식으로 체험 학습 콘텐츠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년 안에 3305m²(약 1000평) 규모의 4D 인체 테마파크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술은 문화 콘텐츠”라고 외치는 조 회장의 엉뚱한 발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양은 21일부터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 전자통신 박람회인 ‘월드 IT 쇼’에 최근 내놓은 신제품 칵테일 전용 술 ‘맥키스’를 들고 참가한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전자회사와 벤처기업들 사이에 식음료 업체로 유일하게 서는 셈이다.

조 회장은 “콜라 주스 등 다양한 제품과 섞어 먹는 것이 맥키스의 장점”이라며 “최근 IT업계 화두 중 하나인 ‘콘텐츠 융합’이라는 메시지를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맥키스를 대표하는 캐릭터를 홀로그램으로 만들어 무대에 세우고 콘서트를 열 계획도 갖고 있다.

○ “롤모델은 나 자신… 늘 즐거운 일 찾아다녀”

조 회장의 ‘엉뚱한 상상’은 ‘벤처 1세대’ 경험에서 비롯됐다. 대기업을 다니다 자동응답시스템(ARS) 사업이 뜰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1993년 운세 서비스 ‘700-8484(팔자팔자)’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사무실도 없이 집 침대 밑에 286컴퓨터를 놓고 사업을 할 정도로 열악했다. 4년 후 시작한 휴대전화 벨소리 사업 ‘5425’는 그에게 ‘성공한 벤처 기업가’ 타이틀을 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만족하지 않고 2004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주류회사 선양을 인수한 것이다. 경남 함안 출신으로 선양의 지역기반인 대전과는 연고가 없고 술 제조 경험도 없어 주변에서 뜯어 말렸다. 하지만 그는 “전화 서비스나, 술이나, 벨소리나 사람들이 좋아할 ‘콘텐츠’를 만들면 통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대기업 방식으로 유통망을 구축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대신 그는 “술은 공장에서, ‘안줏거리’는 바깥에서 만들라”고 강조했다. 대전 대덕구 장동 계족산에 14.5km 황톳길을 만들고 ‘맨발 축제’를 열었다. 주말에는 이곳에서 ‘펀펀(Fun Fun)한 클래식’ 공연을 했다. 계족산 황톳길은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하는 ‘5월에 가볼 만한 여행지’로 뽑혔다. 인수 후 2년이 지나자 효과가 나타났다. 2006년 대전에서 30∼40%이던 선양 점유율은 최근 70% 가까이로 올랐다.

“한 해 6억 원을 내고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기 때문이죠. 그런 걸 하는 게 기업의 최고 가치 아닐까요?”

올해는 회사 설립 40주년이 되는 해다. 주류회사를 ‘콘텐츠 개발회사’로 바꾼 조 회장은 올해부터 ‘선양’ 대신 새로운 이름을 내세워 글로벌 회사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롤모델이 궁금했다.

“롤모델은 나 자신입니다. ‘궁즉통(窮則通)’이라고 궁하면 통하게 돼 있거든요. 오늘도 즐거운 일이 뭐 없을까 찾아 나섭니다.”

대전=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선양#조웅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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