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 마라넬로에 있는 본사에서 만난 루카 디 몬테제몰로 페라리 회장(66)은 제품보다 꿈을 먼저 이야기했다. 이탈리아 자동차산업의 ‘얼굴’로 불리는 몬테제몰로 회장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이다.
“페라리는 어떻게 하면 브랜드 가치를 더 높일 수 있을까 늘 고민합니다. 우리의 전략은 수요보다 적은 차를 만들어 사람들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것이죠.”
○ 쉬운 꿈은 가치가 없다
몬테제몰로 회장은 세계 자동차업계 관계자와 마니아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세계적 명차 페라리의 수장답게 외모는 화려하고 언변은 유창했다. 트레이드마크인 감색 더블버튼 재킷과 갈색 수제구두 차림을 한 그는 종종 농담을 하다가도 자동차 얘기만 나오면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꿈은 쉽게 퇴색될 수밖에 없다”며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려면 희소성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몬테제몰로 회장의 ‘희소성 전략’은 이날 열린 글로벌 경영설명회 ‘포뮬러 페라리’에서 잘 드러났다. 지난해 7318대를 판매한 페라리는 올해 생산량을 7000대 이하로 낮추기로 했다. 희소성을 높이려고 생산량을 줄이는 것이다. 주문생산을 고집하는 페라리로서도 2003년 이후 10년 만의 감산이다.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한 대라도 더 많은 차를 팔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페라리는 자신만의 길을 택한 셈이다.
페라리의 모기업인 피아트는 1분기(1∼3월)에 100만여 대를 팔아 6억 유로(약 8520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같은 기간 페라리는 1798대를 팔았다. 영업이익은 8000만 유로(약 1137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42% 늘었다.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전략이 유효하다는 것을 페라리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페라리의 로고인 ‘도약하는 말’을 단 의류와 액세서리는 전 세계에서 1분에 95개씩 팔리고 있다. 지난해 이 사업으로만 5200만 유로(약 743억 원)를 벌었다. 몬테제몰로 회장은 “이 역시 브랜드 가치와 수익성은 떼놓을 수 없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 “한국은 의미 각별한 나라”
몬테제몰로 회장은 아시아 자동차업계에 큰 관심을 보였다. 도요타가 슈퍼카인 ‘렉서스 LFA’를 내놨고, 현대자동차도 고성능차 개발을 추진 중이라고 기자가 말하자 그는 “한국이나 일본 업체들은 그들의 영역(대중적인 차)에서 훌륭하게 활약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페라리와 그들은 다른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열을 가릴 순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에 좋은 디자이너가 많은 것 같다”며 2011년 열린 ‘페라리 월드 디자인 공모전’에서 우승한 홍익대 학생들을 언급했다.
한국과의 또 다른 인연도 소개했다. 페라리 레이싱팀이 2010년 전남 영암군에서 열린 국내 첫 포뮬러 원(F1)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도 한국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를 바라고,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몬테제몰로 회장의 경영 철학은 ‘사람이 우선’이란 말로 요약된다. 최근 3년간 100여 명의 공장 근로자를 사무직으로 전환했고, 2015년까지 1억 유로(약 1420억 원)를 들여 생산라인 환경을 개선하기로 했다. 그는 “최고의 차를 만드는 사람도 최고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매년 수익의 15∼18%를 쏟아 붓는 연구개발(R&D) 투자 비중도 20%까지 높일 계획이다. 목표는 시대를 아우르는 최고의 차를 만드는 것이다.
몬테제몰로 회장은 ‘꿈의 자동차’를 만드는 데 인생을 던졌다. 미국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그는 1973년 창업자 엔초 페라리의 비서로 페라리에 입사했다. 이후 레이싱팀 매니저로 F1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1991년 페라리 회장에 취임했고, 2004년 모기업인 피아트그룹 회장에 오르며 이탈리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됐다. 이후 정계의 구애가 이어지고 유력한 대권주자로도 거론됐지만 그는 2010년 페라리 회장직에 복귀했다. 이유를 묻자 그는 “페라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저녁식사를 함께하고픈 아름다운 여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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