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안에 별도 건물 지어 국공립어린이집에 20년간 공짜로 빌려줬더니…
‘입주자 자녀 우선 배정’ 혜택으로 젊은 부부 몰리고, 아파트값 2000만∼3000만원 껑충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래미안 휴레스트’ 아파트에 사는 맞벌이 주부 이영은 씨(36)는 지난해 5000만 원을 올려서 전세를 재계약했다. 돈이 부담됐지만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시립어린이집 때문에 다른 데로 이사할 수가 없었다. 6세 큰딸에 이어 24개월 된 작은아들이 다니는 곳이다. 이 씨는 “혹시 사고가 날까 두려운 통학차량에 아이를 태울 필요 없이 출근 때 손쉽게 아이를 맡길 수 있다”며 “비용 부담이 적은 시립어린이집이 아파트 단지 안에 있으니 아이 키우는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이 시립어린이집은 입주를 앞둔 2009년 말 재개발조합과 삼성물산이 고양시에 요청해 이듬해 들어섰다. 당초 키즈카페로 쓰려 했던 1층짜리 건물(연면적 178m²)을 입주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받아 고양시에 20년간 무상으로 빌려줬다. 그 대신 고양시는 동일 순위 내에서 입주자에게 어린이집 정원의 50%를 우선 배정한다는 혜택을 줬다.
처음엔 20년 무상임대 부담 때문에 반대하는 입주자도 있었다. 지금은 젊은층이 몰려들면서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아파트보다 집값이 2000만∼3000만 원 높다. 이지연 시립성사어린이집 원장은 “현재 만 1∼3세 원아 38명 가운데 입주자 자녀가 80%를 넘는다”며 “단지 내 놀이터 체육공원 생태천이 모두 아이들 야외활동 장소”라고 귀띔했다.
올해부터 0∼5세 무상보육이 전면 시행되면서 단지 안에 국공립어린이집을 둔 아파트의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국공립어린이집을 유치하려는 건설사 발걸음도 빨라졌다.
○ “140억 들여 구립어린이집 설치”
국토교통부 ‘주택건설 기준 규정’에 따르면 300채 이상 아파트는 21명 이상, 500채 이상은 40명 이상의 정원을 충족하는 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한다.
지금까지 전국 대다수 아파트에는 국공립 대신 민간에 임대를 줘 운영하는 사립어린이집이 들어서 있다. 서울 시내 440개 임대아파트 단지 가운데 국공립어린이집이 설치된 곳은 56개에 불과하다. 고양시는 전체 32개 시립어린이집 중 민간 아파트에 설립된 곳이 4개뿐이다.
최근 이런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보육의 편의성이 거주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단지 내 국공립어린이집을 설립하는 아파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현석2구역을 재개발해 다음 달 분양하는 ‘래미안 마포 웰스트림’에는 구립신석어린이집이 들어선다. 건물 연면적만 1750m²로, 150명이 다닐 수 있는 서울 시내 최대 규모의 국공립어린이집이다. 재개발조합이 무려 140억 원을 들여 단지 옆에 붙은 골프연습장 땅을 사들여 건물을 지은 뒤 마포구에 기부해 유치했다. 그 대신 마포구는 재개발 용적률을 5% 올려 일반분양 물량을 8채 늘릴 수 있게 해줬다.
SK건설이 경기 화성시 반월동에 짓는 ‘신동탄 SK뷰 파크’에는 130명 정원의 시립어린이집이 설립된다. 이 일대가 수도권의 다른 지역보다 영유아 자녀를 둔 젊은층이 월등히 많다는 점에 착안해 건설사가 먼저 시에 제안했다. 단지 내에 연면적 820m²인 2층짜리 건물을 지어 시에 20년간 무상 임대하기로 한 것. SK건설은 앞으로 분양하는 대단지 아파트에도 국공립어린이집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 “관련 제도 뒷받침 시급”
이 같은 변화는 건설사와 입주자, 지자체의 삼박자 수요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장원종 SK건설 주택사업2팀 부장은 “입주자는 집 가까이에서 질 높은 무상교육을 누릴 수 있고, 건설사는 주택시장 침체기에 젊은층 수요를 끌어들여 분양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공립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는 지자체로서는 적은 비용으로 어린이집을 늘릴 수 있다는 게 이점이다.
▼ “건설사-입주자-지자체 모두 윈·윈·윈” ▼
하지만 건설사나 입주자들의 비용부담이 너무 큰 데다 모든 입주자가 어린이집 수요층은 아닌 탓에 아파트에 국공립어린이집을 설립하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고양시 관계자는 “삼송지구, 원흥지구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시립어린이집 설립 문의가 많이 오지만 무상임차 20년, 입주자 과반수 동의 등 조건을 맞추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 300채 이상 공동주택에 국공립어린이집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올라와 있지만 입주민 재산권 침해 문제가 지적돼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창민 한국주택협회 회장은 “아파트에 국공립어린이집을 늘려 육아 부담을 덜어주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며 “국공립어린이집을 설치하는 건설사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 정부에 제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경석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입주자 재산권 침해 문제는 아파트 용적률에서 어린이집 면적을 빼주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이와 관련한 영유아보육법을 신설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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