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짜리 물건이 있다. 50원은 제품 값, 50원은 세금이다.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이 물건 가격을 90원으로 내리려 한다. 일단 세금 50원은 그대로 두고 제품 값을 10원 낮추는 게 정부의 목표다. 판매자에게 피해를 전가할 수는 없으니 생산자의 공급가격을 내리라고 압박한다. 생산자에겐 그 대신 10원의 세금 혜택을 주기로 한다. 단순 명쾌한 방법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그럼 애초에 소비자로부터 세금을 10원 덜 걷으면 되는 것 아닌가?”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3월 도입한 석유 전자상거래제도가 딱 그렇다. 이 제도는 정부가 석유제품 가격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한 것으로 정유업체, 수출입업자, 석유제품 대리점, 주유소 등이 전자시스템을 통해 석유제품을 거래하도록 한 제도다.
산업부는 이 제도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지난해 7월부터 석유 수입사들에 할당관세(3%) 면제, 수입부담금 환급(L당 16원), 바이오디젤 혼합의무 면제 등의 혜택을 줬다. 모두 합하면 L당 40∼50원의 혜택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일본 경유제품만 대거 수입돼 석유시장에선 “일부 수입사와 일본 정유회사 배만 불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 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산업부는 이 제도에 참여하지 않던 국내 정유 4사를 유인하기 위해 수입사들에만 주던 수입부담금 환급 혜택을 정유 4사에도 똑같이 주기로 했다. 이에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7월부터 전자상거래제도에 참여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와 정유회사는 7월부터 1년간 최소 경유 1040만 배럴과 휘발유 240만 배럴을 전자상거래를 통해 유통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정유회사들은 최소 320억 원의 수입부담금을 감면받게 된다.
소비자들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다. 유례없는 고유가 시대에도 세금을 단 한 푼도 안 깎았던 정부가 정유회사들에 세금 감면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당사자인 정유회사들도 이런 혜택에 시큰둥하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압박을 더이상 외면하기 어려웠다”며 “내년 6월 세금 혜택이 끝나면 전자상거래에 더이상 참여할 이유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이번 합의로 기름값이 조금 싸진다고 해도 국민에게서 걷은 세금을 지원해 기름값을 낮추는 건데 무슨 소용이냐”고 말했다. 산업부는 수입부담금 환급과 관련한 시행령을 개정하기 위해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 중이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런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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