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부터 풀자” 10년전 선택, 파주-화성을 춤추게 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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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에 다시 날개를]<3·끝>경제도 지방도 살린 규제완화

[한국 기업에 다시 날개를] 경제도 지방도 살린 규제완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이던 2003년 2월, 재계는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했다. 진보 성향의 소장파 교수 위주로 꾸려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재벌 개혁’을 외쳤다. 회의 때마다 “집단소송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시행한다” “재벌 계열사 간 상호출자, 부당 내부거래, 순환출자를 강력 규제한다”며 대기업을 겨냥한 규제 안을 쏟아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출범 직후 방향을 180도 선회했다. 그해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2%대로 떨어지고 내수경기가 급격하게 침체되자 ‘현실주의 노선’을 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 규제 완화 10년, 파주와 화성

정부는 과감하게 규제를 완화했다. 2003년 3월 ‘새 정부의 경제운용방향’을 발표하고 기업투자 활성화 조치를 시행했다.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 증가로 위축된 기업들의 투자심리를 회복시키기 위해 수도권 내 공장 신·증설 등 시설투자를 허용했다.

한껏 움츠렸던 기업들은 꽁꽁 묶어뒀던 투자 보따리를 풀었다. LG그룹은 2003년 7월 경기 파주시에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 7세대 공장을 짓기로 했다. 지금까지 ‘LG디스플레이 클러스터’에 총 18조 원을 투자했다. 공장 증설 한도 규제에 발목이 묶였던 삼성전자는 경기 기흥·화성사업장의 생산라인을 증설했다. 화성은 최첨단 ‘세미콘-클러스터반도체 복합단지’로 거듭났다.

당시 기업들의 투자 애로사항을 모아 정부에 건의하는 실무자였던 정봉호 전국경제인연합회 아시아팀장은 “대통령이 미국과 일본을 방문한 뒤 ‘기업 규제를 풀어야 투자가 늘고 결국 경제도 산다’는 데에 공감했다. 그 뒤 정부와 재계가 ‘경제 살리기’라는 한 배에 올라탔다”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파주와 화성은 어떻게 변했을까. 10년 전 40여 가구가 모여 살던 작은 마을이었던 파주시 월롱면은 2006년 4월 LG디스플레이 공장이 들어선 뒤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경험했다.

파주시에 따르면 LG와 관련된 일자리는 2006년 4580명에서 지난해 2만2961명으로 늘었다. 40여 개 협력업체에서 생긴 일자리가 상당수다. 지난해에는 대만의 반도체업체 ASE코리아, 일본 액정표시장치(LCD)업체 EGkr 등 5개 외국 기업에서 총 1조867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지역 자영업자들도 낙수(落水)효과를 누리고 있다. 택시운전사 김현석 씨(60)는 “공장 근무 교대시간마다 택시가 줄을 선다”며 “손님 한 명 찾기 힘들었던 허허벌판이 이제 우리의 주요 사업장이 됐다”고 말했다. 농사를 짓다가 지난해 이곳에 김밥가게를 연 이모 씨(48)는 “사위도 LG디스플레이 공장에 취직해 온 가족이 LG 덕분에 먹고산다”고 했다.

10년 전 규제 완화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화성과 파주는 2006년 이후 5년간 경기 31개 시군 가운데 인구증가율에서 각각 1위, 3위를 차지했다. 2010년부터 최근 3년간 고용증가율은 2위, 4위에 올랐다. 지역내총생산(GRDP)은 경기도내에서 파주가 1위, 화성이 2위다.

재계가 10년 전처럼 파격적인 조치가 있어야 올해도 기업 투자가 되살아나고 경제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 과감한 정책으로 기업 움직여야

얼어붙은 투자, 경제성장률 추락, 대기업에 대한 반대 정서 등이 겹친 현 상황은 2003년 당시와 비슷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 완화로 기업의 투자를 끌어내 경제활성화를 이끌겠다고 했지만 10대 그룹 밖의 기업들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국가대표 2진’ 격인 11∼30대 그룹은 대부분 투자 확대를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투자 시점을 늦추려는 분위기다.

▶본보 20일자 A1면 저성장 터널서 ‘투자 공포증’ 빠진 대기업들
▶본보 20일자 A2면 11∼30대 그룹 심층 설문조사

추가경정예산 편성, 금리인하 등 각종 대책에도 주식시장 역시 별 반응이 없다. 기업들은 다른 한편에서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정치권의 움직임과 일부 정부 부처의 속내만 예의주시하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인천경제자유구역 등 수도권에 국내 기업의 투자를 과감히 허용하고, 서비스산업 분야의 규제를 푸는 등의 가시적인 규제완화 조치가 있어야 시장이 반응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복잡하게 꼬인 정년연장 의무화 후속조치와 통상임금 문제 등 노사 현안에서도 정부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일부 규제를 없앤다고 해도 한편으로 또 만들어낼 것이라는 불신이 시장에 남아 있다”며 “이 같은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파격적인 규제 완화와 경제활성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파주와 화성의 예에서 보듯 규제가 풀려 투자가 이뤄지면 지역 전체가 살아난다”며 “낡은 규제를 확 없애는 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그게 결국 복지이고 지역 불균형,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김지현·김용석 기자, 파주=정지영 기자 jhk85@donga.com
#규제완화#파주#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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