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로 대폭 낮췄다. 추가경정예산 편성과 기준금리 인하 등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얼어붙은 내수와 엔화 약세에 따른 무역흑자 감소로 한국경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2%대의 저성장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KDI는 23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0%에서 2.6%로 하향 조정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3%, 한국은행은 2.6%로 하향조정했지만 두 기관은 추경편성과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가 실물경제에 반영되면 올해 성장률이 2%대 후반에서 3%까지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DI는 내년 한국의 성장률도 한은(3.8%)과 국제통화기금(IMF·3.9%) 전망치보다 낮은 3.6%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KDI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대폭 낮춘 것은 한국경제를 둘러싼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얼어붙은 내수가 좀처럼 부진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KDI 관계자는 “세계경제 회복 지연으로 한국경제가 처한 대외환경은 2.0% 성장에 그친 지난해만큼이나 좋지 않다”며 “추경 편성과 기준금리 인하로 내수가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엔화 약세 등으로 올해 2.6%의 성장률도 달성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은 경기부양을 위한 대대적인 양적완화 정책을 폈는데도 1분기(1∼3월) 성장률이 ―0.2%에 그치면서 6분기째 성장률이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를 지탱해 온 중국도 최근 경제지표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가파른 엔화 약세가 겹치면서 한국의 1분기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56억7000만 달러(약 6조4000억 원)로 99억4000만 달러 흑자를 냈던 지난해 4분기(10∼12월)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전선에는 비상등이 들어온 것이다.
또 미국 등 선진국들이 올 하반기부터 양적완화 정책을 마무리하면서 한국 등 신흥국에 들어왔던 자금이 갑자기 빠져나가 금융시장에 큰 혼란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문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구조상 대외환경 악화가 추경 편성,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새 정부가 강력한 경기부양 의지를 밝히고 있는데도 민간소비와 설비투자는 계속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3월 말 현재 신용카드 사용액과 자동차 할부 구입, 백화점에서의 할부 이용실적인 가계 판매신용은 3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말보다 4조3000억 원 줄었다. 분기 기준으로 카드사태가 한창이던 2003년 9월 말(6조1000억 원 감소) 이후 9년 6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또 4월의 대형마트와 백화점 매출은 작년 동월 대비 각각 9.8%, 1.9% 떨어지는 등 경기부양책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KDI는 향후 정부의 정책방향과 관련해 “구체적인 재원 마련 계획을 감안해 국정과제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공약 등을 무리하게 지키려 하기보다 경기회복에 무게를 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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